도보여행/인도행

[부산/ 7월 25일/ 수요일] 왕피천 물길 따라

추연욱 2012. 7. 24. 22:07

 

 

[부산/ 7월 25일/ 수요일] 왕피천 물길 따라

 

 

앞줄 앉은 분 왼쪽부터, 라일락, 백일봉, 찌릉소, 빛들, 별사모, 너미,

뒷줄  미산, 동녘, 소영이, 구름달, 봉하길, 산두리, 디디, 유심초, 부산아저씨, 뿌리, 약수터, 가람엔, 그대로, 동해여행,
동해여행동행, 영아, 는개, 꽃술, 유동, 리오, 유비한, 해파랑, 비나리, 아해, 물찬제비,

여기서 엠42케이, 달마루를 합쳐,
이렇게 33명이 함께 했.

 

 

 

 

 

서라벌광장, 8시 5분.

 

 

화진휴게소, 9시 15분.

 

 

 

11시. 여시서 부터 큰 버스는 들어가지 못한다.

 

 

 

굴구지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해서 차를 보내달라고 하고 기다렸다.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남중학 (054-782-4294, 010-4134-0565)

 

 

 

이 못에는 온통 말밤이다.

 

 

이게 말밤이다.

오른쪽이 뿌리다. 아직 덜 여물었는 듯,

완전히 영글면 까맣다.

안에 하얀, 마치 쌀을 빻은 것 같은 가루가 들어있다.

먹어본 적은 있는데, 별 맛은 없었던 것 같다.

말밤 사진은 "다음"에서 빌렸다.


 

 

 

 

 

짐차 2대에 나누어 타고 굴구지마을로 간다.

 

 

 

굴구지산촌펜션 앞, 11시 35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

이곳이 왕피천 계곡트레킹 하류쪽 출발점이다.

 

우리는 여기서 생태탐방로를 따라 용소까지 갔다가 물길로 돌아올 것이다.

 

 

 

 

 

 

 

 

 

 

 

 

 

상천동 관리초소, 12시 25분.

 

 

 

 

왕피천을 내려다 본다. 

 

 

 

 

王避川은 옛날 왕이 피난했다 해서 얻은 마을 왕피리에서 비롯한다.

 

실직국 安逸왕이 濊나라의 침략을 받아 왕피리로 피신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를 뒤져보니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신라 제5대 파사니사금(80~112 재위) 23년(102).

"8월에 음집벌국(안강 지역)과 실직국이 서로 지경을 다투다가 왕에게로 와서 이를 판결하여 달라고 청하였다.

왕은 이는 어려운 일이라 하며 말하기를 '금관국 수로왕은 연로하고 지식이 많으므로 그를 불러서 묻자' 하고 곧 그를 초빙하였는데,

수로왕은 의론을 바로 세움으로써 그들이 서로 다투는 땅을 음집벌국에 속하게 하였다.

……

이때 奴(사람 이름)는 도망하여 음집벌국의 主 타추칸이란 사람의 집에 의지하여 있으므로, 왕은 사자를 보내 그 奴를 수색하였는데,

 타추간이 보내주지 않았으므로 왕은 노하여 군사를 보내 음집벌국을 정벌하니 그  主 타추간은 무리를 거느리고 항복하였다. 

이에 실직국 · 압독(경산)국도 항복하였다."

 

실직국은 삼한시대 삼척 지역에 있었던 부족국가이다. 

<삼국사기>의 기록대로 대략 100년대 초에 신라에 정복되었다.

예나라는 강릉 지역에 있었던 부족국가다.

학생시절 배웠던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舞天" 하던 그 예나라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고려의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머물렀다는 이야기다.

고려 제31대 공민왕(1351~1374)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신한 것은 분명하다.

여기까지 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주변에 왕의 군사들이 머물렀다는 마을 방위동, 군사들이 밥을 먹었다는 포전,

왕이 적에게 붙잡혔다는 핏골, 군량미를 저장했다는 거리곡 등 전설과 관련이 있는 지명들이 남아있다.

 

전설을 전설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왕피천은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본신동 금장산 금장샘(해발 650m쯤)이서 발원하여

울진군을 지나 동해로 드는 67.75m의 깨끗한 강이다.

 

왕피천의 물줄기는 크게 3줄기가 있다.

울진군 서면 소광리 북쪽 해발 1,119m 지점 동쪽에서 발원하여 불영계곡을 따라 동류하는 광천,

영양군 수비면 본신동 금장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다가 발리동에서 북동쪽으로 흐르며 장수포천이라 불리다가,

왕피리를 지나면서 왕피천이라 불리는 왕피천 본류와,

울진군 원남면 길곡리 서쪽 765.3m 지점 동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매화천 등이다.

이형석, <한국의 산하>, 홍일재, 1990.


 

 

 

 

 

계곡에 들어섰다.

 

 

 

 

 

 

 

Franz Lehar(1870~1948)

Gold and Silver Waltz, Op.79

Halle Orchestra

Sir John Barbirolli Cond.

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4cfE



 

 

 

장마가 끝나고 이제 무더위다.

폭염경보가 내렸단다.

드러난 내 팔이 따금따끔하다.

 

 

용소 아래쪽 입구, 12시 30분. 

 

 

 

표지판에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3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래담"이라 하면서 이렇게 썼다.

“용소 이야기”는 구산3리에 있는 굴구지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 가운데 좁은 협곡 사이에 움푹 패인 연못에 살았다는 용에 관한 전설이다.

 

왕피천 65km 구간 중 가장 좁은 바위 협곡으로 강우시 많은 수량이 좁은 협곡을 빠져나가는 광경은

장엄 그 자체이다.

상류부 담수 유역이 넓어 댐 건설 계획이 있었으나 주민 반대로 무산된 ‘속사댐’ 예정지가 바로 여기다.

소용돌이 치는 물살에 의해 형성된 용소는 폭이 좁은 만큼 깊어서 용이 살았다고 전한다.

 

1925년(을축년) 대홍수를 예감한 용이 살던 용소를 금빛 찬란한 비늘을 번쩍이며 빠져 나가는 것을 왕피리 새댁이 굴구지 친정으로 만삭의 몸으로 몸풀러 가다가 이 광경을 보게 되어 그 자리에서 눈이 멀고 낳은 아이는 몸에 금빛 비늘을 붙인 채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점심, 12시 40분.

 

 

 

 

 

용소 입구로 가서 기념사진을 찍고,

 

 

 

 

 

 

 

 

그래서 물이다.

작년 7월 24일보다 물이 훨씬 많고, 깨끗하다.

그날은 비가 왔지만 오늘은 햅볓이 따갑다.

물이 한결 시원하다.

 

 

 

 

물길을 따라 굴구지마을로 내려간다.

사실 길은 없다. 그냥 계곡을 따라가는 것이다.

 

 

 

 

 

 

 

 

 

 

 

 

 

 

 

 

 

 

 

 

 

 

 

 

 

 

 

 

 

 

 

 

 

 

 

 

 

 

 

 

 

 

 

 

 

 

 

 

 

 

 

 

 

 

 

 

 

 

 

여기서 물길은 끝난다. 3시 25분.

 

 

 

 

굴구지마을로 돌아왔다.

 

 

 

 

 

여기서 차를 타고,

 

 

4시에 우리가 짐차를 탔던 연못으로 왔다.

 

 

옷을 갈아입고, 4시 20분에 출발,

8시 10분 부산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