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길(신문왕 호국행차 길)과 감은사지- 2023년 11월 9일
부산 노포동 터미널에서 7시 20분 출발 버스를 타서,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큰길을 건너,
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 8시 25분.
8시 40분 100번 버스를 탔다.
추원정류장, 9시 10분.
추원 정류장 주변에는 국화가 곱게 피어있고,
이런 매점도 있다.
어제 8일이 입동이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는 좀 쌀쌀하더니,
낮에는 쨍쨍 맑은 날씨에 좀 더웠다.
왕의 길 입구 모차골로 들어간다.
여기에는 아직도 애기똥풀이.
루드베키아
"왕의 길", 전에는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 했다,
언제부터인가 "왕의 길"로 불리더니 요즘은 그렇게 굳어지는 것 같다.
이번 나의 "왕의 길" 탐방은 다섯 번째다.
1. 2014년 9월 14일 답사
2. 2014년 11월 19일
3. 2015년 11월 1일
4. 그 지옥 같던 운영자 시절, 2018년 6월 9~ 10일, 대구방 주관 전국정기도보
5. 그리고 오늘은 혼자다. 왕의 길에 왕은 없고 나만 걸었다.
"왕의 길"은 아직 아니다. 여기서 1.7km 더 들어가야 한다.
백합나무
황룡약수터
잣솔방울을 하나 주워 열어 보았더니.
단풍이 고와 인자암에 들렀더니, 10시 30분.
모차골 인자암 옆, 이곳에서 신문왕 호국행차길은 시작된다.
그러니까 나는 반대로 가는 것이다.
■ 왕의 길은,
동해의 용이 되어 죽어서도 왜구로부터 신라를 지키고자 한 문무왕의 장례길이며,
그의 아들 신문왕이 부왕을 추모하기 위해 대왕암으로 행차하던 길이기도 하다.
또 신문왕은 만파식적을 얻으러 이 길을 따라 이견대로 행차하였다.
추원마을에서 왕의길이 시작되는 모차골까지는 2㎞쯤 된다.
모차골에서 용연폭포까지 이어지는 왕의길은 약 4㎞ 정도다.
용연폭포를 조금 지나 기림사에서 산행을 마친다.
■ 萬波息笛
제31대 神文王의 이름은 政明, 성은 김씨, 開耀(唐 高宗의 年號) 원년 辛巳(681년) 7월 7일에 즉위하였다.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 가에 感恩寺를 세웠다.(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이렇게 말했다.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이 절을 처음 창건했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 바다의 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왕위에 올라 개요 2년(682년)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으니 용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대개 유언으로 유골을 간직해 둔 곳은 대왕암이고, 절 이름은 감은사이다.
뒤에 용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利見臺라 했다.)
이듬해 壬午 5월 초하루에 해관 파진찬 朴夙淸이 아뢰었다.
“동해 속에 있는 작은 산 하나가 물에 떠서 감은사를 향해 오는데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 합니다.”
왕이 이상히 여겨 日官 김춘질에게 명하여 점을 치게 했다.
“대왕의 아버님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三韓을 鎭護하고 계십니다.
또 김유신공도 삼십삼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인간세계에 내려와 大臣이 되었습니다.
이 두 성인이 덕을 함께 하여 이 성을 지킬 보물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만일 폐하께서 바닷가로 나가시면 반드시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물[無價之寶]을 얻을 것입니다.”
왕은 기뻐하여 그달 7일에 利見臺로 나가 그 산을 바라보고 사자를 보내 살펴보도록 했다.
산모양은 마치 거북의 머리처럼 생겼는데 산 위에 한 개의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합해서 하나가 되었다.(혹은 그 산도 또한 낮과 밤을 대나무처럼 열렸다 합쳤다 했다고 한다)
사자가 와서 사실대로 알렸다.
왕이 감은사에서 묵는데 이튿날 점심 때 보니 대나무가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데,
천지가 진동하고 비바람이 몰아치며 7일 동안이나 어두웠다.
그달 16일에 이르러서야 바람이 자고 물결도 안정되었다.
왕이 배를 타고 그 산에 들어가니 용 한 마리가 검은 玉帶를 받들어 바친다.
왕은 용을 맞아 함께 앉아서 묻는다.
“이 산이 대나무와 함께 혹은 갈라지고 혹은 합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용이 대답한다.
“비유해 말씀드리자면 한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란 물건은 합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오니 聖王께서는 소리로 천하를 다스리실 징조입니다.
왕께서는 이 대나무를 가지고 피리를 만들어 부시면 온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이제 대왕의 아버님께서 바닷속의 큰 용이 되셨고,
유신은 다시 天神이 되어 두 성인이 마음을 같이 하여 이런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보내시어 나로 하여금 바치게 한 것입니다.”
왕은 놀라고 기뻐하여 오색 비단과 金과 玉을 주고는 사자를 시켜 대나무를 베어 가지고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때 산과 용은 갑자기 모양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왕이 감은사에 묵고 17일에 기림사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太子 理恭(뒤에 효소왕이 된다)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타고 달려와서 하례하고는,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었다.
"이 옥대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왕이 말한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이 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 보십시오.”
이에 옥대의 왼편 둘째 쪽을 떼어서 시냇물에 넣으니 금시에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이내 못이 되었으니 그 못을 龍淵이라 불렀다.
왕이 대궐로 돌아오자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月城天尊庫에 간직해 두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 지면 날이 개며,
바람이 멎고 물결이 가라앉는다.
이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효소왕 때에 이르러 天授(周 則天武后의 연호) 4년 癸巳(693년)에 夫禮郞(당시 화랑)이 살아서 돌아온 이상한 일로 해서 다시 그 이름을 고쳐 萬萬波波息笛이라 했다.
자세한 것은 그의 傳記에 실려 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제2 만파식적.
수릿재, 11시 50분
탐방로가 많이 허물어졌다.
계곡은 공사용 차가 드나들어 넓어졌다.
■ 탐방로가 이렇게 허물어진 것은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지나간 탓이다.
2022년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9월 6일 포항시와 경주시에 가장 큰 피해를 남기고 동해로 빠져나갔다.
이날 오전 6시에 형산강에 홍수경보가 발령됐으며,
몇 개의 마을이 물에 잠겼고, 송도해수욕장 부근 해안도로가 침수돼 통행이 통제됐다.
오천읍의 냉천이 범람해 옆 아파트를 덮쳐 지하주차장에서 주민 9명이 고립되어 7명이 사망했다.
경주시에서는 건천읍 송선저수지와 하동 하동저수지의 붕괴 위험으로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길 전구간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또 그래서 출입을 금지하는 게다,
탐방로 보수공사
불영재 고개마루에 있는 불영봉표, 12시 20분.
"延慶墓 香炭山因 啓下 佛嶺封標"이라 적혀 있다.
"연경의 묘에 쓸 향탄 즉 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일반 백성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불령에 봉표를 세운다"는 말이다.
"연경"은 조선 제23대 순조(1790~ 1834 재위)의 아들 孝明世子(1809~ 1830)의 묘호이다.
■ 단풍은 나무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광합성을 멈추고,
나뭇잎에서 초록빛을 띠게 하는 엽록소 농도가 줄어야 붉은 색을 띤다.
올해는 늦더위가 이어져 단풍이 제때 들지 못했다.
단풍 빛깔이 제대로 나려면, 햇빛이 충분하고 일교차가 크면서 수분이 적당해야 하는데,
올해는 가을철 전국 평균 기온이 높고, 9월 비 온 날도 예년에 비해 조금 많아,
잎이 단풍 들기도 전에 말라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용연폭포, 12시 50분.
참빗살나무
가을 햇살에 곱게 익어 보석이 되었다.
산사태가 크게 난 듯.
제액 題額을 만들고 무언가 썼는데, 읽을 수가 없다.
왕의 길, 기림사 쪽에는 출입금지 표지와 지키는 사람도 있다.
추원사 쪽에도 출입금지 표지는 있었는데,
이른 시간이어서 감시 요원이 출근하지 않아 들어올 수 있었던 같다.
그래서 이 이름다운 길에 탐방객이 없나 보다.
정자는 새로 지었네.
전에는 間香亭이라는 날렵한 건물이 있었는데.
수국 마른꽃, 이렇게 크니 목수국인가?
기림사 삼성각, 1시 20분.
기림사 삼천불전
관음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
기림사 대적광전
천왕문
기림사 일주문
임정교 林井橋, 1시 35분.
기림사 창건 때 이름이 林井寺였지.
기림사 앞 정류장에서
노란 버스 130번을 탔다., 1시 40분.
감은사지 입구 탑마을 정류장에 왔다., 2시 5분.
시간이 남아 감은사지로.
동해 용왕이 된 문무왕이 머무는 용연.
국보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
날씨가 땨뜻해서 그런지 벼를 벤 그루터가에 새싹이 나 마치 봄의 들판 같다.
탑마을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2시 55분, 파란 버스 150번이 왔다.
3시 10분, 월성 원자력후문 정류장에 왔다.
3시 10분에 701번 버스가 왔고,
4시 35분, 태화강 역에 왔다.
동해선 전동열차는 5시에 출발했다.
용연폭포에서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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