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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방(평일도보) 2016년/ 1월 18일/ 월요일] 동래 충렬사~동래읍성~동래향교

추연욱 2016. 1. 18. 23:38

 

 

 

[영남방(평일도보) 2016년/ 1월 18일/ 월요일] 동래 충렬사~동래읍성~동래향교

 

 

 

 

충렬사

 

 

 

 

 

 

 

 

 

 

 

 

 

 

 

 

 

 

 

 

충렬사 본당이다.

조일전쟁 당시 부산지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선영를 모신 사당이다.

부산 지역에서 전사한 선렬 23명과 동래부, 부산진, 다대진 및 부산포 해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위패 4위,

의병 62명의 위패를 모신 충렬사의 본당이다.

 

 

 

 

 

 

 

 

 

 

 

의열각

 

조일전쟁 중에 순직한 여인 네 분을 모신 사당이다.

동래부사 송상현을 따라 순절한 韓金蟾, 부산첨사 鄭撥장군을 따라 순절한 愛香과,

동래성 전투에서 기왓징을 던지면서 싸운 무영의 두 여인 등 네분의 義女를 모셨다.

한금섬은 함흥기생으로 알려져 있다. 13세 때 송상현을 따라 동래읍성으로 와서 송상현의 시중을 들다가

잡혀 3일간 항거하다가 순절했다.

 

 

 

 

 

 

 

 

 

 

 

 

 

 

 

 

 

 

 

 

 

인생문, 2시 50분.

 

 

 

 

 

 

 

 

 

 

 

 

 

 

 

부산 31운동 기념탑

191931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5815일 착공, 199631일 완공하였다. 부산광역시에서 세웠다.

부지 2,310탑 전체의 높이 21.5m, 좌대는 842독립운동 모습을 새긴 원추형군상도 높이는 6m.

 

 

 

 

 

 

 

 

 

 

 

 

 

북장대

 

 

 

 

 

 

 

 

 

 

 

 

 

 

 

 

 

 

복천동고분군

 

 

복천동고분군(사적 제273) 

한국전쟁 때까지 이곳은 나무가 우거진 숲이었다. 그후 판자촌이 들어서고 주택지로 바뀌었다.

현재 외형상 고분의 흔적은 없다. 그러나 현재의 주택 밑에 수많은 고분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서쪽 경사면은 19699월부터 4년에 걸쳐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고분 10기를 발굴했고, 능선 동쪽 경사면은 19749~10월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4, 능선정상부는 19809월부터 19812월까지 부산대학교박물관에서 27기를 발굴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모두 113기 고분을 조사하였다 

대형 고분과 소형고분, 또 각각 형식이 다른 5종의 무덤 양식이 섞여있어 복잡한 양상을 띠고있다. 또한 가야 지역의 다른 고분군, 예를들면 창녕 교동고분군, 함안 아라고분, 고령 지산동고분군, 김해의 고분군들 보다 무덤양식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난다. 

이곳의 무덤들은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발전하는 양식을 보인다 

고분군이 있는 구릉 유리돔 안 야외전시관 53호고분은 구덩식돌덧널무덤, 54호는 딸린덧널이 있는 덧널무덤이다. 38호고분은 딸린덧널이 있는 덧널무덤으로 가야 무덤 중 순장이 확인된 가장 오래된 고분이다. 90, 91호는 독널무덤, 65호는 앞트기식돌방무덤이다 

축조시기로 보면 소형단곽묘, 대형다곽묘와 토광묘가 가장 빠르고, 그 다음이 석실묘와 토광묘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대형다곽묘가 만들어졌으며, 가장 늦게 소형수혈식석곽묘와 대형석실묘가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을 축조한 사람들은 BC 2C 이후 삼한시대 동래 지역은 변한 12국 중 독로국 · 거칠현국 · 장산국 · 내산국에 속했다가 금관가야에 속한 정치집단이었을 것이다.

 

복천동고분군은 경주 다음 가는 남부지방 최대의 고분군이며, 경주 다음 많은 양의 유물이 나온 곳이다여기서 나온 유물은 9200점에 달한다. 토기 2500, 금속기류 2720, 유리구슬을 포함한 장신구 4010 점 등이다.

 

 

 

유물로 보아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기 전인 4~5C의 고분들로 보인다.   

이후 점차 신라에 영향권으로 편입되었다.

 

 

  

 

 

 

 

 

 

 

 

 

 

 

 

 

 

 

 

 

 

 

 

 

 

 

 

 

 

 

 

 

 

 

 

 

 

 

萊州築t城碑記

 

 

 

동래읍성 북문

 

 

 

우리는 읍성 안에서 밖으로 나간다.

성문 오른쪽으로 옹성이 복원되어 있다.

 

 

 

복원된 성곽 왼쪽으로 雉城도 복원되어 있다.

 

 

 

북장대

 

 

 

 

 

 

 

 

 

 

 

 

 

 

 

 

 

 

 

 

 

 

 

 

 

 

 

 

송공단

 

 

 

가운데 비, 비제에,

"충렬공 송상현 순절비"라 썼다.

 

 

 

 

義女位

 

 

 

 

 

 

 

 

 

 

 

동래부 동헌 충신당

 

 

 

 

 

 

 

 

 

 

 

 

 

 

 

 

 

 

 

 

 

 

동래부동헌 충신당 현판도 바뀌었다.

2012년 12월 30일 답사 때 찍었다.

 

 

 

여러 건물들이 새로 복원되었다.

아직은 완성되지는 않은 듯.

 

 

 

 

 

 

 

망미루와,

 

 

 

독진대아문도 복원했다.

 

 

 

망미루와 독진대아문은 금강공원에 있었다.

 

망미루, 2011년 7월에 찍었다.

 

 

 

 

 

 

금강공원에 있는 독진대아문, 2012년 12월에 찍었다. 

 

 금강공원에 있는 망미루와 독진대아문 등 두 건물은 제 자리를 찾아,

복원되었다.

금강공원에는 이 건물들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사실 망미루는 제 자리도 아니다.

망미루는 동래부 동헌의 문루다.

본디 자리는 복원한 망미루 맞은편이다.

 

 

 

 

동래기영당

 

 

 

耆英會는 노인으로서 뛰어난 분, 즉 지식층 노인들이 모여 관청의 자문역할을 하던 단체이다.

 

 

 

 

 

 

 

 

 

 

 

 

현재의 기영당 건물은 본디 동래 장관청이었다.

 

 

 

 

 

 

이곳이 동래읍성 서문터이다.

 

 

 

 

 온천장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