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 가을 저녁의 시
김춘수(1922~ 2004)
부서져 흩어진 꿈을
한 가닥 한 가닥 주워 모으며
눈물에 어린 황금빛 진실을
한 아름 안고 나에게로 온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듯이
넘쳐흐르는 이 靜寂을
고요히 흔들며
나에게로 온다
저 섧게 물든 전나무 가지 사이
가리마 같은 언덕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에게로 온다.
김춘수, <김춘수 시 전집>, 서문당, 1986.
얼룩
김춘수(1922~ 2004)
낙엽은 지고
그늘이 낙엽을 덮는다
저무는 하늘, 머리를 들면 멀리
바다가 모래톱을 적시고 있을까,
세상은 하얗게 얼룩이 지고
무릎이 시다.
발 아래 올해의 문꽃은 지고
소리도 없다.
김춘수, <김춘수 시 전집>, 서문당, 1986.
하 늘
김춘수(1922~ 2004)
언제나 하늘은 거기 있는 듯
언제나 하늘은 흘러가던 것
아쉬운 그대로
저 봄풀처럼 살자고
밤에도 낮에도 나를 달래던
그 너희들의 모양도
풀잎에 바람이 닿듯이
고요히 소리도 내지 않고
나의 가슴 어루만지던
그 너희들의 모양도
구름이 가듯이
노을이 가듯이
언제나 저렇게 흘러가던 것
김춘수, <김춘수 시 전집>, 서문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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