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정희성/ 봄, 이 봄의 노래,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

추연욱 2015. 3. 29. 23:06

 

 


정희성

 

가까이 갈 수 없어

먼발치에서 서서 보고 돌아왔다

내가 속으로 그리는 그 사람마냥

산이 어디 안 가고

그냥 거기 있어 마음 놓인다

 

정희성, <돌아다보면 문득>, 창비, 2008.

 

 

 

이 봄의 노래

 

정희성

 

무엇이 이 산에 꽃을 피우나

봄이 오면 해마다 진달래 피어

이 마음 올연히 붉어오겠네

가야지 어찌 아니 돌아가리

그리운 보리밭 푸른 하늘아

정답던 친구 어디 가고

이 봄만 남아 푸르러지려나

만나면 부둥켜 울고 싶어서

4월은 더욱 붉어라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창작과 비평사, 1996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

 

정희성

 

풀을 밟아라

들녁엔 매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정희성, <답청>, 책 만드는 집,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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