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심훈/ 그 날이 오면

추연욱 2014. 11. 13. 09:59

 

 

 

 

 

그 날이 오면

 

심훈(1901~ 1936)

 

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훈, <그날이 오면>, 1949.

 

※ 이 시에서 "그날"은 조국이 광복되는 날이다.

 

 

C. M. Bowra교수는 그의 저서

<Poetry and Politics 시와 정치>에서

심훈의 시 <그 날이 오면>을  "서계 저항시의 본보기"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