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서정주/ 가만한 꽃, 동천, 행진곡, 무제, 견우의 노래

추연욱 2011. 9. 12. 18:08

 

 

가만한 꽃

 

서정주(1915~ 2000)

 

새가 되어서 날아 가거나

구름으로 떴다가 비 되어 오는것도

마음아 인제는 모두 다 거두어서

가도 오도 않는 우물로나 고일까.

우물보단 더 가만한 한송이 꽃일까.

 

 

 

 

 

 

冬天

 

서정주(1915~ 2000)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현대문학>, 1966.

 

 

 

 

행진곡

 

서정주(1915~ 2000)

 

잔치는 끝났드라. 마지막 앉어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루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가지고

우리 모두다 돌아가는 사람들.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멀리 서있는 바닷물에선

난타하여 떨어지는 나의 종소리.

 

서정주, <서정주 시선>, 정음사, 1956.

 

 

 

 

無題

 

서정주(1915~ 2000)

 

오늘 제일 기쁜 것은 고목나무에 푸르므레 봄빛이 드는거와, 걸어가는 발뿌리에 풀잎사귀들이 희한하게도 돋아나오는 일이다. 또 두어살쯤 되는 어린것을이 서투른 말을 배우고 이쿠는것과, 聖畵의 애기들과같은 그런눈으로 우리들을 쳐다보는일이다. 무심코 우리를 쳐다보는일이다.  

 

서정주, <서정주 시선>, 정음사, 1956.

 

 

 

牽牛의 노래

 

서정주(1915~ 2000)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었다, 낮었다, 출렁이는 물살과

살 몰아 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림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銀河ㅅ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수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織女여, 여기 번쩍이는모래 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부풀어오르는 가슴속에 波濤

이 사랑은 내것이로다.

 

눈섭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七月 七夕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멕이고

織女여, 그대는비단을 짜세.

 

서정주, <서정주 시선>, 정음사,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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