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꽃
서정주(1915~ 2000)
새가 되어서 날아 가거나
구름으로 떴다가 비 되어 오는것도
마음아 인제는 모두 다 거두어서
가도 오도 않는 우물로나 고일까.
우물보단 더 가만한 한송이 꽃일까.
冬天
서정주(1915~ 2000)
내 마음 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현대문학>, 1966.
행진곡
서정주(1915~ 2000)
잔치는 끝났드라. 마지막 앉어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루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가지고
우리 모두다 돌아가는 사람들.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멀리 서있는 바닷물에선
난타하여 떨어지는 나의 종소리.
서정주, <서정주 시선>, 정음사, 1956.
無題
서정주(1915~ 2000)
오늘 제일 기쁜 것은 고목나무에 푸르므레 봄빛이 드는거와, 걸어가는 발뿌리에 풀잎사귀들이 희한하게도 돋아나오는 일이다. 또 두어살쯤 되는 어린것을이 서투른 말을 배우고 이쿠는것과, 聖畵의 애기들과같은 그런눈으로 우리들을 쳐다보는일이다. 무심코 우리를 쳐다보는일이다.
서정주, <서정주 시선>, 정음사, 1956.
牽牛의 노래
서정주(1915~ 2000)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었다, 낮었다, 출렁이는 물ㅅ살과
물ㅅ살 몰아 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림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銀河ㅅ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수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織女여, 여기 번쩍이는모래 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부풀어오르는 가슴속에 波濤와
이 사랑은 내것이로다.
눈섭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七月 七夕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멕이고
織女여, 그대는비단을 짜세.
서정주, <서정주 시선>, 정음사,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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