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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7월 보름 백중날· 우란분절

추연욱 2011. 8. 11. 18:22

 

음력 7월 보름 백중날 · 우란분절

 

1. 음력 7월 15일은 백중날이다.

절에서는 우란분절이라 하여 법회를 열고 齋를 지낸다. 

 

<동국세시기, 洪錫謨란 사람이 1849에 지은 책>에,

“우리나라 풍속에서 백중날이라 한다. 중들은 재를 올리며 불공을 드리고 큰 명절로 안다. 생각건대 <荊楚歲時記-梁(502~557)나라 사람 宗懍이 편찬한 책>에 ‘中元日에는 僧尼 도사, 속인들이 모두 盆[항아리]를 만들어 모든 절에 바친다’고 하였다. 또 생각건대 <우란분경>에는 ‘목련비구가 五味(신맛, 쓴맛, 매운맛, 단맛, 짠맛)와 百果를 갖추어 분 안에 넣어가지고 시방대덕(세상의 모든 부처)에게 공양한다’ 지금 말하는 백종날은 백과를 가리키는 것이다.”라 하였다.

 

2. 百中은 百種, 中元이라고도 한다.

남녀가 서로 모여 온갖 음식을 갖추어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논다. 지방에 따라서는 씨름대회, 장치기[手搏] 등 기예 내기도 한다.

백종이란 백 가지 곡식 종자를 베푸는 풍속에서 기인했다고 한다. 승려들은 절에서 백 가지 과일과 나물을 갖추어 공양을 하므로 백종날이라 하였다 한다.

백종날은 고대 농사일을 진행하는 과정에 이루어진 한 행사와,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고려 시대 우란분회 불공이 같은 날에 행함으로써 뒤섞여진 것으로 보인다.

우란분회는 신라, 고려 시대에는 승려, 속인 할 것 없이 모두 성대하게 부처님을 공양하였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민속 행사로 발전하였다.  

 

<동국세시기>에,

“우리나라 풍속에 백중날을 亡魂날이라 하여 여염집 부녀자들이 이날 저녁 달밤에 나물 과일 술과 밥을 차려놓고 죽은 어버이의 혼을 부른다. 이것은 우란분회의 유풍인 듯하다.”라 하여 또 다른 풍속을 말하고 있다.

 

3. 우란분회

“盂蘭盆”이란 범어 ullambana의 음역이다. 지옥에 떨어져 倒懸(거꾸로 매어달림, 곧 지옥)의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혼령을 위해 불사를 행함으로써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의식이다.

 

우란분회는 <목련경>, <불설우란분경>에 근거한다.

<목련경>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목련은 왕사성에 사는 한 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나복, 어머니는 청제부인이다. 아버지는 엄청난 부자였다. 그는 항상 육바라밀을 행한 선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자 나복은 아버지 무덤에 3년 시묘를 하고는, 모든 재산을 삼등분하여 그 하나는 어머니에게 맡겨 가문을 보전하게 하고, 다른 하나 역시 어머니에게 맡겨 삼보(佛法僧)에게 공양하며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오백승재(스님들을 초대하여 정성으로 음식을 대접하는 일)를 베풀게 하고, 자신은 나머지 하나를 가지고 금지국이란 나라로 장사를 떠난다.

 

아들 나복이 떠나자 어머니 청제부인은 하인들에게, 중들이 집 앞으로 오면 몽둥이로 때려죽이라 지시하고, 나복이 재를 올리라고 주고 간 돈으로 닭과 돼지 등 가축을 많이 사서 살찌게 먹인 후 기둥에 매달아 찔러 피를 내 동이에 받고, 돼지를 묶어 몽둥이로 두드려 패니 슬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또 동물의 배를 갈라 간을 내어 귀신에게 제사하고 환락을 일삼았다.

 

나복은 3년만에 가지고 간 밑천의 3배를 벌어 집으로 돌아온다.

나복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급히 문을 닫아걸고 후원에 幢과 幡(불당을 장식하는 깃발)을 세워 재를 지낸 모양으로, 수저를 이리저리 흩어놓아 스님들이 공양을 받고 방금 떠난 것처럼 거짓으로 꾸몄다.

 

그리고 아들을 맞이하여 “강물이 저렇게 탕탕한데도 그 위에는 공연한 파도가 일어남과 같아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자는 적고 사람을 해롭게 하는 자는 많으니라. 내가 너 간 뒤로부터 날로 너를 위하여 오백승재를 아니 지냈다면 지금 네가 집에 돌아와 문득 중병을 얻어 이레가 못다 가서 죽어 무간지옥에 들어갈 것이다.”라 거짓말을 하였다.

 

그 어미는 갑자기 중병을 얻어 이레를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나복은 어머니 산소에 나아가 토굴을 짓고 삼년 시묘를 살며, 훌륭한 장인을 청해 불상을 조성하고 공양하였다. 

 

삼년시묘를 끝낸 나복은 어머니 무덤을 하직하고 바로 기사굴산(영취산)으로 부처님을 찾아 출가한다.

 

부처님은 “나복아, 남염부제 중에 한 남자거나 한 남종이거나 한 여종을 보내어 부처님을 따라 중이 되면 팔만사천 탑을 조성함보다 나으니라. 현세부모는 백 년동안 복락을 받을 것이요, 칠대 선조는 당대에 극락정토로 왕생하거든 하물며 자기가 보리심을 발함에 있어 어찌 선과를 얻지 못하랴.” 하고는 이마를 만져 수기하시며 牧犍連이란 이름을 주었다.

 

 

석굴암 십대제자상 중 제2상 목건련

안장헌 사진, 황수영, <석굴암>, 열화당, 1989.

 

이리하여 나복은 부처님의 십대제자의 반열에 오르고 육신통을 이루어 신통제일이 된다. 

 

그리고 부처님의 권유에 따라 기사굴산 빈바람이란 절에서 수행한다.

목건련은 선정에 들어 33천을 관하던 중 화락천궁(극락)에 이르러 돌아가신 아버지가 편히 계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목건련은 돌아와 부처님께 여쭌다. “어머니 세상에 계실 적에 제게 이르기를 날로 오백승재를 베풀었다 하셨으니 죽어서는 마땅히 화락천궁에 날지어늘 천궁에 볼 수 없사오니 지금 어느곳에 있나이까?”

부처님은 대답하신다. “너의 어머니는 세상에 있을 적에 삼보를 믿지 않고 악업을 많이 지어 그 죄 수미산과 같은지라 죽어 지옥에 들어 갔느니라.”

 

이리하여 목건련은 어머니를 찾아 8대 지옥을 순례한다.

 

목건련의 지옥순례

 

① 剉碓地獄[방아지옥]에서는 지옥 중생이 방아 속에 들어가 찧어진다. 몸이 천 조각이나 끊어져 혈육이 낭자하다. 날마다 만 번 죽고 만 번 산다.

생전에 일체중생을 토막토막 끊어놓고 남녀가 둘러앉아 먹으면서 입으로 맛을 즐기는 죄업을 지은 사람이 이 방아지옥에 온다고 한다.

 

② 劍樹地獄 지옥 중생이 칼로 된 나무 숲속에 있다. 손으로 칼나무를 잡으면 전신에 베어지고 발로 칼산을 밟으면 온몸이 부서진다.

이승에서 因果를 믿지않고 중생을 꼬챙이에 꿰어 먹으면서 맛을 즐긴 죄업으로 여기에 온다고 한다.

 

③ 石磕地獄[멧돌지옥] 멧돌이 죄인을 간다. 혈육이 낭자하다. 벌레들을 함부로 많이 죽였다.

 

④ 餓鬼地獄 머리는 큰 산과 같으나 목구멍은 바늘귀와 같다. 걸어가는 동안 오백 개나 되는 깨어진 수레바퀴 소리를 낸다.

전생에 다른 사람이 죽은 이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려 하면 기를 쓰고 못하게 하며 삼보를 공경하지 않았으므로 여러 겁에 음식 냄새도 음식 맛도 모른다.

 

⑤ 灰河地獄은 잿물이 끓는 지옥이다. 중생이 잿물 가운데 있어 물결을 따라 몰리는데 온몸이 데어 벗겨진다. 동쪽 문이 열리면 그곳으로 쫓아가지만 동문은 닫히고, 서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쫓아가지만 다시 닫히고……. 이 같이 물결을 따라 달리기를 잠깐도 쉬지 않는다.

전생에 달걀을 많이 삶아 먹었다.

 

⑥ 鑊湯地獄에서는 가마솥에 물이 끓어 용솟음쳐 죄인을 삶아낸다. 삼보를 믿지 않고 부자로 태어나서 중생을 많이 지져먹었다.

 

확탕지옥.

옥졸이 죄인을 장대에 꿰어 끓는 무쇠솥에 집어넣고 있다.

화엄사 시왕도에서.

 

⑦ 火盆地獄에는 지옥중생이 머리에 불동이를 이고 온몸에 불꽃이 이글이글 타고있다. 짐승의 골수를 많이 먹었다.

 

이렇게 7개의 지옥을 지나도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옥졸이 일러주는 대로 어머니를 찾아 8번째 지옥 무간지옥으로 간다.

 

⑧ 無間地獄은 검은 담장이 만번이나 첩첩으로 쌓였으며 담 높이는 만길이나 되고 쇠그물로 그 위를 덮었다. 또 그 위에는 구리쇠로 된 개 네 마리가 있어 입으로 모진 불을 토하고 그 불꽃이 허공을 태우는 듯하다.

 

무간지옥을 8대 지옥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무서운 곳이다.

五逆罪(부모, 阿羅漢, 佛身)에 상처를 입히고,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죄)를 지은 자, 삼보를 믿지 않은 자가 무간지옥으로 간다. 무간지옥에는 문은 있어도 문으로 드나들지는 않고, 거꾸로 달려 떨어진다.

이곳에는 필바라침(必波羅鍼)이라는 바람이 부는데 이 바람이 불면 온갖 것의 몸을 말리고, 피까지 말려 버린다. 또 뜨거운 불꽃이 휘날리면서 온몸을 태우거나 살과 가죽이 익어서 타버린다. 이 고통을 받는 사이사이 염라대왕의 꾸지람을 계속 들어야 한다.

 

無間이란 ‘업의 과를 받는데 다른 생을 받을 틈이 없다., 고를 받는데 간단이 없다., 중생의 고통이 지옥의 넓이와 같아서 간극이 없다.’는 뜻이다.

 

무간지옥

 

육신통을 갖춘 목건련도 여기에는 들어갈 수 없다.

그리하여 다시 부처님의 신통력을 빌어 무간지옥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찾는다.

옥졸이 쇠창을 가지고 어머니의 몸을 찔러 일으켜서 땅에 떨어뜨리니 일백 모공에서 피가 흐른다. 다시 쇠칼을 씌우고 칼로 몸을 싸서 데려와 모자간에 만난다. 모자간 면회 중에도 고문은 계속된다. 쓰러지면 옥졸은 붙들어 세우고 기다란 부젓가락으로 몸에 박으니 오장육부가 타는 듯하다.

면회시간도 짧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본 목건련이 어머니를 대신하여 죄를 받으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옥주는 부처님께 여쭈어 보라 일러준다.

 

부처님의 힘으로 어머니는 대지옥(무간지옥)에서 나와 흑암지옥으로 가게 된다.

부처님은 “너의 어머니가 세상에 있을 적에 죄가 크고 무거우며 업장을 없애지 못하였으므로 적은지옥으로 들어갔다.”

“보살과 승려들이 재를 올리고 남은 밥 한 발우를 줄 터이니 지옥에 가서 어머니께 드려보라. 목련이 밥을 가지고 지옥에 가니 어머니가 밥을 보고는 아직도 탐심을 고치지 못하여서 왼손으로 밥을 움켜쥐고 오른손으로는 사람을 막으나 밥이 입으로 들어감에 그 전과 같이 모두 불이 일어났다.”

 

다시 목건련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보살을 청하여 대승경전을 읽게 하니 어머니는 흑암지옥에서 아귀 중에 탄생했다.

일단 지옥에서는 벗어난 것이다.

 

아귀도


목건련이 부처님께 “어머니를 모시고 항하수(갠지스강) 가에 가서 물을 마시게 하고 배를 씻어 드릴까 하옵니다.”라 말한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諸佛은 물을 마시면 좋은 젖과 같고, 승려가 이 물을 마시면 감로수와 같고, 십 선인이 물을 마시면 능히 기갈을 면할 것이고, 너의 어머니가 물을 마시면 도리어 모진 불이 되어 흘러 복중에 들어감에 창자를 태워 없애리라.”

 

다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보살들을 청하여 번과 당을 조성하여 49개의 등을 켜고 많은 목숨을 놓아준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개로 탄생한다. 육도에서 지옥- 아귀도 거쳐 축생도에 이른 것이다.

 

부처님께서 또 “7월 보름날을 정하여 우란분재를 베풀면 어머니가 개에서 벗어나리라. 칠월 보름날은 대중이 해제하는 날이니 한 곳에 모여 너의 어머니를 건져내어 정토에 나게 하여라.”고 가르친다.

 

목건련은 부처님의 말에 따라 시장에 나아가 버들잎과 잣나무 가지를 사서 우란분재를 베풀어 어머니를 개에서 벗어나게 하고, 어머니로 부처님을 뵙게 하여 오백 계를 받을 때,

목건련은 어머니께 ‘어머니는 삿된 마음을 버리시고 바른 도로 나아가소서.’라 말한다.

 

그러자 목건련의 효심의 감동한 천모가 내려와서 영접하여 도리천에 왕생하게 한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도리천궁에 나서 모든 쾌락을 받게 돠고, 당내에서는 법문을 드날리게 하여 중생을 제도하였다.

 

<불설우란분경>에는,

부처님은 어머니의 업장을 소멸하고 온갖 고난에서 벗어나는 법을 가르쳐준다.

 

“모든 대중들은 7월 보름 自恣(夏安居를 마칠 때 하는 행사. 같이 안거에 들었던 중들이 자신이 지은 죄를 다른 중들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한다) 때 七世의 부모와 현재의 부모와 액난 중에 있는 자를 위하여 온갖 음식과 과일을 갖추어 큰 그릇에 담고 향유로 불을 밝히고 자리를 깔아라. 온갖 훌륭한 공양구를 모두 갖추어 분에 담고 모든 대덕과 스님들을 공양하여라.…… 이날 자자를 하신 스님들께 공양한 자는 현재의 부모와 7세의 부모와 六種親屬들이 모두 삼도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으며 의식이 저절로 갖추게 될 것이니라.”

 

우란분회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목련경>에 나오는 인연설화를 배경으로 하여, 목련이 그 어머니를 아귀도에서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7월 15일 安居自恣日에 여러 가지 음식과 과일, 등과 초 등 공양구를 갖추어 현세부모와 7대부모를 위해 올리는 불사를 말한다.

이런 의식이 확대되어 모든 죽은이의 넋을 위로하고 정토에 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

 

우란분재는 중국의 효사상과 결합하여 일찍부터 성행했다.

불교가 지배이념이었던 신라, 고려는 승속을 막론하고 우란분회가 성행했고,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시대에도 그 효사상으로 인하여 줄기차게 이어져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지옥

 

1. 산스크리트로 naraka, 음역하여 奈落, 의역하여 地獄이다.

현세에서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어 가는 곳이다. 섬부주의 땅 밑 500由旬(1유순은 대략 6.5km) 떨어진 철위산 바깥 변두리 어두운 곳에 있다.

지옥은 閻魔왕(염라대왕이) 다스린다. 염마왕 밑에 冥官, 소머리 모양을 한 牛頭, 말의 머리 모양을 한 馬頭 등의 옥졸이 지옥 중생을 지배하며 劍山, 血池 등에서 갖가지 형구를 가지고 잔인한 형벌을 준다.

이들은 인정이란 전혀 없고 무감각하고 잔인하다. 죄인이 아무리 신음하고 애원해도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다. 염라대왕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2. 黃泉이란 본디 중국 황하의 황토층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두컴컴하고 쓸쓸한 곳으로 죽은 사람이 가는 저승이란 의미가 강했다. 죄지은 자가 가는 곳은 무서운 아니었다. 그러다가 불교 수입 후 naraka를 의역하여 지옥이란 말을 쓰게 되면서 황천과 지옥은 통용하게 되었다. 남북조시대(5세기 초에서 6세경 말경까지)에 들어 민간신앙과 불교의 지옥사상이 결합하여 지옥관이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영혼불사관과 인과응보의 관념에 의해 현세의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지옥관이 형성되었다.

 

3. 불교의 지옥에 관한 관념은 고대인도 브라만교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Veda>에는 夜魔(Yama)王이 다스리는 한 세계가 있었다. 이 세계는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시원한 곳이며, 술잔치에 노래와 춤이 있는 즐거운 곳이었다. 그러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원주민들의 종교 관념이 점차 아리안들에게 침투하게 된다.

거기다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서 발생한 수메르문명에서는 일찍이 지옥사상이 있었다.

대략 BC 10C쯤 지옥에 관한 관념이 인도에 들어와 토착화 과정을 거치면서 야마왕이 죽음의 신으로 변해 죽은이의 잘잘못을 심판하는 역할을 맡게되고 따라서 그가 다스리는 나라도 암흑의 세계로 바뀌게 된다.

 

閻魔王은 본디 지옥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었는데, 중국에 들어와서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十王사상으로 전개된다. 그 결과 시왕 가운데 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염라대왕 

염라대왕/ 통도사 시왕도 중 제5.

염라대왕은 본디 지옥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었다.

중국에 들어와서 도교의 시왕사상과 결합하여 8대 지옥 중 발설지옥을 담당한다. 이 그림 하단에는 대애지옥(멧돌로 죄인을 가는 지옥)이 그려져 있다.

죽은 이는 죽은 지 5 · 7일째 되는 날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다.

 

 

발설지옥 

형틀에 죄인을 매달고, 그 혀를 뽑아 부풀려서 소가 밭을 갈듯 하는 형벌을 준다.

 

業鏡臺

생전에 죄를 지은 이는 반드시 염라대왕 앞에 나아가 재판을 받는다.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염라대왕 앞에는 업경대라는 신령스러운 거울이 있어 전생이 지은 죄의 현장이 생생하게 나타난다.

완주 위봉사 대광명전. 필자/ 사진.

시왕도 가운데 업경도는 제5대왕인 염라대왕도에 그려진다.

거울 속에 동물을 죽이는 모습이 나탄나다.

<기림사 시왕도>에서.

 

4. 지옥의 종류에 대해서는 경전마다 차이가 있다.

<大毘婆沙論>에는 8대지옥이라 하여 等活地獄 · 黑繩地獄 · 衆合地獄 · 號叫地獄 · 大叫地獄 · 炎熱地獄 · 大熱地獄 · 無間地獄의 8지옥을 말하고 있다. 8대지옥은 어느 곳에나 네 벽에 문이 하나씩 있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문마다 네 개의 소지옥이 있다. 각 지옥마다 16개의 소지옥이 있으니 지옥은 모두 128개나 된다. 

 

5. 우리나라 무속에서는 사람이 수명을 다하면 저승사자를 따라 구만리 저승길을 간다. 밤낮 쉬지않고 사흘을 걸어야 한다.

저승에 도착하면 이승과 저승의 혼백을 주관하는 삼라천자에게 심판을 받는다. 아주 선한자는 극락으로, 아주 악한자는 지옥으로 간다. 선악이 비슷하거나 불확실한 자는 奈河라는 강을 건너 바리공주의 일곱 왕자가 다스리는 대왕전에 보내져 다시 심판을 받는다. 혼령은 이곳에서 전생의 인연에 따라 사람으로 환생되거나 악인은 지옥으로 가야한다. 참회하면 개과천선의 기회도 준다.

가족이나 친지가 망자를 위해 덕행을 하고, 덕행을 망자의 몫으로 빌면 형벌이 감해지지만 喪中에 가족이 악행을 하면 형벌이 가혹해진다. 

 

지옥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고 나쁜 짓을 하지않고 착한 일을 널리 행하도록 하기 위한 데 그 참뜻이 있다.  

 

또 지옥은 이승에서의 신분의 귀천 등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덕행과 악행에 따라 엄격하게 심판하는 곳이라 하여 無私殿으로 불린다.

 

명부전과 지장보살

 

불교의 지옥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절집이 명부전이다. 안에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어 지장전이라고도 하고, 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어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조선초기 이전에는 시왕전과 지장전은 독립된 전각이었다. 시왕은 본디 도교의 신이다. 이 신이 불교에 수용되어 당나라 말엽에 이르면 <豫修十王生七經>이란 경전에 성립된다. 이 경의 내용은 시왕에게 공양하고 죄업을 참회하는 七齋儀를 행하면 죽은 뒤 좋은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이 고려시대 원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 널리 퍼지고, 내세의 심판관인 시왕에 대한 신앙이 형성되어 갔다. 

 

불교를 탄압하더 조선시대에도, 부모에 효도하고 죽은 부모를 좋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한 불교신앙과 의식은 배제할 수 업었다.

지장보살은 명부시왕의 무서운 심판에서 망인을 구해주는 명계의 교주역할이 강조되고, 이에따라 망인의 형벌과 새로 태어날 세계를 결정하는 시왕과, 망인을 자비로써 인도하는 지장보살이 결합한 것이다. 

고려 말 조선초에 이르면 지장전과 시왕전을 결합하여 명부전이라 했다.

 

 

표충사 명부전

 

명부전은 죽은이를 천도하기 위한 의식 곧 49제를 행하는 곳이다. 사람이 목숨이 끊어진 뒤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까지의 기간을 中陰이라 한다. 그 기간이 7 · 7일 곧 49일이다. 이 기간 동안 지옥의 7왕에게 생전에 한 일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이어 백일, 1주년, 3주년 될 때 또 3왕에게 심판을 받아 그 결과에 따라 六道(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가운데 한 곳에 태어난다고 한다.

 

<시왕도> 중 제10 오도전륜왕.

죽은지 3년 째 되는 날 모든 재판과 명부의 형벌을 끝낸 중생들은 오도전륜왕에게 나아가 마지막 심판을 받는다. 심판에 따라 죄인은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인간 · 천상 등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림에 대각선으로 육도로 길을 떠나는 혼령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엄사 <시왕도>에서.

  

 

명부전에는 가운데 본존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왼쪽에 道明尊者, 오른쪽에 無毒鬼王을 봉안하여 삼존불을 이룬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고 시왕상 앞에는 시중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이 밖에도 대왕을 대신하여 심판하는 판관 2인, 기록을 담당하는 綠事 2인, 문을 지키는 장군 2인 등을 마주보게 배치하여 대략 29체의 상이 갖추어진다.

 

선운사 도솔암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지장보살도/ 일본 근진미술관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국보 제13호) 목조아미타삼존상(보물 제1312호)과 아미타삼존도(보물 제1313호)에는

아미타불의 우협시로 지장보살을 봉안하였다.

 

 

명부전 

선운사 명부전 안애는지장보살과 명부시왕을 모셨다.

가운데 지장보살,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 좌우로 명부시왕상, 시왕 사이사이에 동자상이 있다. 

지장보살과 시왕들을 보좌하는 권속들이다.

판관은 시왕의 재판을 도운다. 검은 복두를 쓰고있다. 사자는 관을 쓰고, 손에 창을 들고있다. 문 입구 양쪽에 인왕역사상이 있다.

 


지장보살상 뒤쪽 벽에는 시왕탱화를 건다.

지옥을 그린 그림으로 우란분경변상도, 감로왕도, 시왕도, 지장시왕도 등이 있다.

이러한 그림은 전생의 악업으로 받는 고통의 실상을 나타냄으로써 권선징악과 중생교화를목적으로 한다.

 

 

지장시왕도

동화사 염불암 지장시왕도

가운데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전자와 무독귀왕. 그 옆으로 비스듬히 각 5명씩 시왕을 그렸다.

하단에는 판관, 녹사, 동자 등 권속을 배치하였다. 

 

 

 감로도

곡성 태안사 봉서암 감로도.

상단에는 7여래와 보살등이 있고,

가운데 잘 차려진 제사상이 있다. 굶주린 영혼[아귀]들에게 단이슬[甘露]을 베풀어 아귀도에서 벗어나게 함을 나타냈다.

하단에는 한바탕 흥겨운 놀이판을 그렸다.


 

불교의 지옥관은 다른 문화권의 지옥사상과 크게 다르다. 그것은 지장신앙이다.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자비심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점이다.

 

 

지장보살은 범어로 Kşitigarbha다. Kşiti는 땅, garbha는 자궁이란 뜻이다. ‘포장한다’는 뜻도 있다. 곧 지장은 대지와 같이 삼라만상의 모체이며, 만상을 평등하게 자리게 하는 힘을 갖는 것이란 의미이다.

지장보살은 브라만교 신화의 地天에서 유래한다. 지천은 인도 아리안족 신화에서 최고의 여신으로 대지의 덕을 신격화한 것이다.

지천은 땅을 수호하고 대지신녀의 이름에 의해 재산을 모으고 병을 치료하고 적을 항복시킬 때 초청되는 여신이었다. 이 지신에 대한 신앙이 불교에 습합되어 이상화한 뒤 대승불교에 이르러 불교의 체계 속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 지장보살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모니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이른바 무불시대 五濁惡世에서 번뇌와 죄업으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일을 부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보살로 등장하게 되었다. 육도에서 윤회하는 중생들을 모두 제도하기까지는 자신은 성불을 뒤로 미루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언제 어디서나 자비행을 행하는 보살로 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받기에 이른다.

중국에서는 7C 수나라 때부터 널리 신앙되다가 당나라때 유행한 정토신앙과 더불어 널리 신앙되었다.

 

지장보살상은 다른 보살들처럼 영락과 화려한 보관 등으로 꾸며지지 않고 수행하는 비구의 모습니다. 고려와 조선 전기에는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지물로는 석장과 보주를 든다. 석장은 본디 불가에서 행도걸식할 때나 보행할 때 벌레나 짐승들이 밟히지 않도록 일깨우는데 사용하는 나무 지팡이이다. 윗부분에 금속 고리가 달려있어 석장을 흔들면 고리들이 부딪쳐 소리가 나게 된다. 보주 곧 여의보주는 붓다의 진리와 법을 상징하며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로 믿어왔다. 지장보살의 지물로 보주가 채택된 것은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로 보인다.

 

 

大願本尊地藏菩薩

<지장보살본원경>에 있는 이야기를 요약 정리한다. 이 이야기는 목건련이 어머니를 구하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오랜 옛날 각화정자재왕여래가 이 세상에 있을 때 이야기다.

이때 시라선견이라는 바라문의 18세 된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녀는 여러 세에 걸쳐 깊고 두터운 복을 심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 시라선견 역시 삼보를 공경하고 三學(戒定慧)을 부지런히 닦고, 수명을 다하여 하늘나라에 태어났다.

그러나 어머니 悅帝利부인은 방탕한 생활에 빠져 因果의 이치를 믿지 않고 불교에 대한 비방도 서슴치 않았다. 어느날 부인은 술에 취해 쓰러져 잠이 들었다가 갑자기 혈관이 터지고 전신의 뼈가 꼬여들어 곧 죽고 말았다.

어머니마저 잃은 소녀는 슬피 울다가 ‘어머니의 혼령은 어디에 태어났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평소 바른 생활을 하지 않았으니 좋은 곳으로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이르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부모가 남긴 모든 재산을 팔아 어머니를 위한 齋를 올리기로 하였다. 꽃과 향, 여러 가지 옷과 음식 등을 마련하여 각화정자재왕여래가 사는 절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러나 그날 길가에는 수많은 걸인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었다.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도 있었다. 소녀의 맑은 마음에 그들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으로 묻어왔다.

“중생공양이 제불공양이라 하였으니…….”

 

소녀는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고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옷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는 약을 주어 위로하였다. 그러나 길은 멀고 사람은 많았다. 전재산을 팔아 마련한 음식과 옷과 약이었지만 곧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소녀는 마침내 자기 옷까지도 벗어주고 나니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소녀는 구덩이 속에 들어가 마지막 남은 한 조각 향을 피우고 꽃을 흩으며 기도하였다.

“각화정자재왕여래시여, 이제 소녀는 감히 부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제할 자를 구제하여 저의 작은 淨業을 헛되이 않게 하옵소서. 어머니의 혼령을 위해 자비를 베푸시고 그 태어난 곳을 알게 하여 소녀의 괴로움을 그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순간 부처님이 소녀 앞에 나타나셨다.

“착하다! 성녀여, 18세 처녀의 몸으로 옷을 벗어 걸인에게 주고 벗은 몸을 흙 속에 갈무리하였으니, 누가 너를 보살이라 하지 않겠느냐. 내 너의 공양을 달게 받고 너의 소망을 이루어주리라.”

이때부터 소녀는 지장보살(땅 속에 몸을 갈무리한 보살)이라 불렀다.

 

그뒤 소녀는 각화정자재왕여래의 인도로 지옥이 있다는 대철위산 서쪽 重海라는 바닷가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는 중생들과 지옥의 실상을 보게된다.

소녀의 공덕으로 각화정자재왕여래가 이미 3일 전에 무간지옥에 오셔서 어머니와 함께 고통 받던 죄인들을 모두 구제하여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지옥에서 나온 소녀는 각화정자재왕여래에게 나아가 서원을 세운다.

“맹세하오니 저는 미래의 시간이 다할 때까지 죄의 고통에 빠진 중생이 있으면 마땅히 널리 방편을 세워 해탈하게 하오리다. 맹세하오니 죄고를 받는 육도중생 모두를 해탈하게 한 다음 저는 성불할 것이옵니다.”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든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수많은 분신을 육도에 나타내어 일제 중생을 교화해 줄 것을 당부받는다

“그대는 사바세계에 미륵불이 오실 때까지 스스로가 지은 억세고 거치른 罪苦 때문에 나쁜 세상에 떨어져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라 그들이 모든 고통을 벗어나 해탈하게 하라.”

 

“세존이시여! 오직 바라옵건데 후세의 악업중생에 대해서는 염려를 마옵소서.”라고 3번 반복한다.

 

 

참고한 책

경전연구모임, 지장보살본원경, 불교시대사, 1991.

김현준, 사찰, 그 속에 깃든 의미, 교보문고, 1992.

동아출판사, 한국문화상징사전 2, 1995.

박도화, 보살상, 대원사, 1991.

菩提布敎院, 목련경 불설우란분경, 1994.

이기선, 지옥도, 대원사, 2011.

이석호 역 동국세시기, 을유문화사, 1969.

최상수, 한국의 세시풍속, 홍인문화사,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