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4월 28일, 일요일] 지리산 둘레길 4, 금계~ 동강
11시 50분, 벽송사 주차장
오늘 비
온다는 예보는 없었는데,
차를 타고 벽송사로 가는 도중 비가 왔다. 조금.
오늘 이 지리산 둘레길 4구간,
2011년 11월 30일, 길 잡은 적이 있다.
그날 하루 종일 엄청 비가 왔다.
의탄교 지나 의중마을 가는 길
와룡대
2018년 2월 28일, 자락님의 깃발에 함께 했다.
이날도 비 많이 왔다.
용유교에서 바라 본 용유담
그런데 오늘 다행하게도 비는 오지 않았고,
그렇게 많이 덥지도 않았다.
벽송사 장승을 다시 만들어 세웠다.
여장승 금호장군
남장승 호법대장군
● 벽송사
* 목장승 2기(금호장군, 호법대장군)
왼쪽 장승은 몸통 부분에 禁護將軍, 오른쪽 장승에는 護法大將軍이라 음각되어 있다.
왼쪽 禁護將軍은 여장승으로 1969년 산불이 나 머리가 타고 코도 떨어져 나갔다.
눈은 툭 불거져 나오고 입은 양 끝을 벌려 성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 護法大將軍은 남장승으로 민머리에 눈은 튀어나오고 콧구멍이 크고 코끝이 뭉툭하다.
입은 합죽하며 입 주위에 불꽃같은 여러 갈래로 수염이 나있고 턱 밑에도 수염이 있다.
두 장승은 전체 높이는 4m쯤 되는데, 1m정도 땅에 묻혀있고,
썩은 몸통을 지탱하기 위해 둑을 쌓아 1m 정도 더 묻었고, 드러나 있는 부분은 2m쯤 된다.
약 80년 전에 세웠다고 한다.
단단한 밤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장승의 몸통은 붉은색이다. 눈은 애초 흰색이었던 같은데 지금은 상당히 탈색되었다.
이 장승들은 명문으로 보아 사찰 입구에 세워 인왕의 역할을 대신하여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이었을 것이다.
사찰장승은 불이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수문장 같이 서서 불법을 수호한다.
예천 용문사의 호법대장군, 삼원대장군이 그 예이다.
이 미인송은 300살쯤 된다고 한다.
■ 벽송사는 함양군 마천읍 추성리에 있다.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졌으나 여러 번의 화재로 사적기가 불타 역사를 알 수 없다.
유물로 미루어 보아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중종 15년(1520) 碧松대사 智嚴이 중창하여 벽송사라 했다.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다. 이때 불탄 뒤 곧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건물로는 금당인 보광전과 方丈선원, 간월루, 종루, 산신각이 있다.
문화재로는 <묘법연화경>, 고려 초기 양식으로 보이는 삼층석탑(보물 제474호)와 목장승 2기가 있다.
※ 智嚴대사(1464~1534)는 부안 사람으로 속성은 宋氏이다. 호는 野老이며, 居室號가 碧松堂이다.
어려서부터 책과 劍을 좋아하여 兵書에 통하였다. 뒤에 북방의 野人을 토벌할 때 종군하여 전공을 세웠다.
어려서부터 책과 劍을 좋아하여 兵書에 통하였다
28세 때 계룡산 상초암에 들어가 祖澄대사에게 출가했다.
조선 중종 3년(1508) 가을 금강산 묘길상암으로 들어가 <大慧語錄>을 보다가 크게 깨쳤다.
또 <高峰語錄>을 통해 깨달음을 더욱 깊게 했다.
그래서 지엄은 육조 혜능의 17대 적손인 대혜 宗杲(고) (1089~1163)와,
臨濟 義玄의 18대 적손인 고봉 原妙(1239~1295)를 전승하였다 한다.
중종 29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제자로 芙蓉堂 靈觀이 있는데 영관은 서산대사 休靜의 스승이다.
영관의 제자들이 흥성하여 오늘날 한국 불교계는 거의 그의 법손으로 이루어져 있다.
쌍계사 永慕殿에 벽송대사의 진영(정조 5년 조성)이 있다.
벽송대사 진영/ 벽송사 소장
진감국사. 남악당, 벽송당 진영/ 쌍계사 소장
淸虛堂
● 서암정사
● 서암정사는 벽송사의 주지인 원응 스님이 한국전쟁 때 지리산에서 죽어간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했다고 한다.
원응 스님은 벽송사 중창에 몰두하던 1970년대 어느날 우연히 서암정사 터를 발견하고 주변 땅을 사들였다.
그런 후 1989년 6월에 홍덕희라는 석공과 함께 석굴법당 불사를 시작하여 2001년 완공하였다.
이리하여 30년 불사가 거의 마무리 됐다. 스님에 의해 벽송사가 중창되었고, 서암정사는 새로운 절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극락전, 나한전 등 석굴 속 바위벽과 천정에는 살아서 볼 수 있는 극락의 절경이 조각돼 있다.
서암의 연혁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愚潭 丁時翰(1625~1707)은 1686년 함양에 있는 안국사에 머물렀는데,
“……西庵까지 걸어갔는데 거리는 벽송암에서 수리 가량이다.
지세가 높고 넓으며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 금대암과 다르지 않다”고 그의 <山中日記>에 기록하고 있다.
대웅전 벽화, 팔상도 두 번째 그림 毘藍降生도
싯달타,
어머니 마야부인의 옆구리로 태어난다.
아홈 마리 용이물을 뿜어 아기를 목욕시킨다.
일곱 걸음을 걸으며 "天上天下唯我獨尊 내가 귀한 만큼 당신도 귀하다."라 읊는다.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어난다.
馬鳴이 지은 <붓다차리타>에는 이와 다른 탄생게가 보인다.
"此生爲佛生 이 생을 부처의 생으로 한다
則爲後邊生 곧 가장 마지막 생으로 한다
我唯此一生 나는 오직 이 생에 있어서
當度於一切 마땅히 일체를 건져야 한다."
벽송사 주차장, 12시 55분.
1시, 금계마을
의탄교/ 금계~동강구간 시작점
의탄교 지나 좌측 도로로 가다 바로 우측 가파른 산길로 올라 너른 장소에서 점심을 먹고,
점심, 1시.
함양군 마천면 의중마을, 1시 50분.
의중마을은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다.
의중마을과 우리가 지나온 의평마을, 그리고 강 건너 금계마을을 합쳐 의탄리다.
의탄소의 '所'는 특정 기능을 가진 천민집단의 마을을 말한다.
그들은 이런 깊은 산골에서 어떤 물건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무엇을 만들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의탄"이란 마을 이름에서 '탄'을 숯탄[炭] 자로 보면 숱을 구웠을 수도 있다.
또 이곳에 풍부한 옻나무를 이용하여 옻칠용 액을 생산했거나,
또 많은 닥나무를 이용하여 종이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마을 앞으로 엄천강이 흐르니, '탄'은 여울탄[灘] 자인지도 모른다.
엄천강은 운봉에서 흘러와 뱀사골, 백무동, 칠선계곡의 물을 모아 함양 산청을 지나 낙동강으로 든다.
竹圃臺
제법 높은 대 위에 비를 세웠는데,
비제에 "竹圃臺",
비문에 "竹圃杖屨所 慶州李公圭玹, 甲辰 三月"
"장구소"란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둔 곳이란 뜻이다.
경치좋은 쉼터라는 뜻도 있다.
의중마을 보호수
금계~ 동강구간/ 벽송사 목장승 스템프 인증장소
友松臺
"友松臺, 樵隱 鄭栽朝 公遊憩所 우송대는 초은 정재조 공께서 놀고 쉬던 곳이다.
子 柄春 中元 壬寅 六月 日 아들 병춘이 백중날 임인년 유월 일에 새기다.
우송대 옆 벽면에
"義湖臺, 慶州鄭公翼鉉 杖屨所
강 건너 창원마을 채석장, 큰 불상
용유교, 3시 10분.
孝子 贈 朝奉大夫 童蒙敎官 平山 申永彦之閭
"郡守 李鳳和 愛民 御文碑"
어떤 집 아랫마당, 4시 10분.
어디인지,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없다.
아랫마당 한 편에 커피와 다뜻한 물을 준비해,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마시게 배려해 준다.
송문교와 와룡대
동강마을, 5시 25분.
엄천교를 건너 원기마을
5시 55분, 돌아아오는 차에 올랐고,
9시에 동래에 도착했다.
칠선암 가는 길
칠선임
'도보여행 > 인도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남정기도보/ 5월 19일, 일요일] 해동용궁사~ 해운대 동백섬 (0) | 2019.05.20 |
---|---|
[부산/ 5월 15일, 수요일] 솔마루길, 십리대밭길, 태화강 꽃축제 (0) | 2019.05.16 |
부산/ 4월 17일, 수요일] 통영 소매물도 (0) | 2019.04.18 |
관룡산 · 화왕산- 2019년 4월 15일 (0) | 2019.04.16 |
[부산/ 4월 6일~ 7일, 토, 일 ]군산 시간여행과 선유도- 2 (0) | 2019.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