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1. 청도몰래길
기온이 차츰 오르고 신록은 날로 색이 진해지고 있다. 화려한 꽃이 아니더라도 농도를 달리하는 나뭇잎의 색만으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햇볕이 눈부시기는 하지만 따가울 정도는 아니라 걷기에는 연중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계절에는 탁 트인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걷기 코스를 찾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명산의 둘레길, 해안길, 강을 따라 걷는 길, 섬 둘레길 등 다양한 걷기 코스가 나름의 묘미를 지니고 있다. 제각각 길의 어려움이 다르고 조망도 차이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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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투어센터에서 도로를 따라 각남면 방향으로 가면 곧 만나는 빨간색 우산우체통. 멀리 오른쪽으로 성곡댐 제방과 청도 남산이 보인다. |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이번에 청도 성곡저수지 둘레길인 ‘몰래길’을 찾았다. 호수 둘레를 따라 걷는 길은 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길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더 많다. 섬 둘레길은 섬을 중심으로 바깥 방향을 보며 걷는 반면 호수 둘레길은 계속해서 걸어온 길, 걸어갈 길을 바라보며 걷는다. 멀리 조망점이 있다면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조망하는 즐거움이 있다. 몰래길은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비슬산 조화봉이 조망의 기준점 역할을 한다. 대부분 구간에서 조화봉이 바라보이는데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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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몰래길의 기점인 청도군 풍각면 그린투어센터. |
성곡저수지는 물을 채운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저수지다. 기점인 그린투어센터가 있는 성수월마을은 이전에 아래쪽에 있다가 수몰된 마을의 주민들이 이주한 곳이다. 예전에 나온 지형도나 일부 포털 지도에는 저수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성수월마을에는 개그맨 전유성 씨가 세운 철가방극장이 있다. 몰래길은 2012년 당시 행정안전부 심사에 선정돼 전유성 씨가 주도해 만든 길이다. 그래서 이름을 비롯해 코스 곳곳에 웃음 코드가 묻어난다. 저수지의 남서쪽은 도로를 따라 도보길이 조성돼 있고 북동쪽으로는 차량이 통행하지 않는 임도가 자연스러운 산의 곡선을 따라 조성돼 있다. 망향정이 있는 야트막한 산을 제외하면 경사를 느끼기 어려운 편안한 길이다. 또 포장도로를 따라가는 구간이 있지만 따로 길을 내서 일부 덱 탐방로 외에는 내내 흙길을 걸을 수 있다.
이번 코스는 경북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성수월마을 그린투어센터에서 출발해 당산나무를 보고 되돌아와 석곽묘·우산우체통~황소등~등고개~성곡댐~백안정~망향정 갈림길~망향정~안산정 갈림길~철가방극장을 거쳐 그린투어센터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다. 이번 코스의 전체 거리는 6.5㎞ 정도로 답사 시간은 2시간~2시간30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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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저수지 북서쪽으로 흘러드는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 |
코스는 그린투어센터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몰래길 출발에 앞서 센터 바로 앞에 바라보이는 당산나무를 보고 간다. 센터 오른쪽 성곡1리경로회관 앞에서 저수지로 내려간다. 당산나무가 있는 둔덕 오른쪽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내려와 경로회관 앞으로 되돌아가면 된다. 당산나무는 수몰된 옛 마을에서 옮겨 심었다. 당산나무 아래에서는 북서쪽 조화봉은 물론 남동쪽으로 저수지 하류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지금은 들어가서 볼 수 있지만 비가 많이 와 물이 차면 센터 쪽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경로회관으로 돌아가다가 도로에 닿기 전 오른쪽으로 꺾어 도로 아래 흙길로 걸어가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이전 복원한 석곽묘와 우산우체통이 나온다. 석곽묘는 수몰되기 전 발굴조사를 마치고 옮긴 것이다. 우산우체통은 일 년에 한 차례 연말에 발송해 주는 느린 우체통이다. 이곳에서는 하류 방향으로 댐 제방이 보이고 그 뒤로는 멀리 남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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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저수지 북동쪽 호안을 따라 하류의 댐 제방으로 가는 길. |
석곽묘에서부터 각북면 소재지로 가는 도로의 가드레일 옆으로 트레킹 길이 조성돼 있다. 3, 4분 가다가 도로와 헤어져 푹신한 흙길을 간다. 곧 징검다리가 나오는데 비가 많이 오면 잠기는 곳이다. 이럴 때는 바로 옆 도로로 올라가 다리를 건너면 된다. 벚나무가 줄지어 있는 비포장길을 걷는다. 산책하듯 편안한 길을 걸으면 오른쪽으로 당산나무와 우체통이 보인다. 길은 산의 옆구리를 따라 들락날락하며 여러 굽이를 돈다. 징검다리에서 15분 정도면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인 황소등이다. 왼쪽 오르막으로 가면 능선에서 노인봉과 풀산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곧바로 만나는 등고개에서는 조화봉이 정면에 바라보인다. 10분 정도면 성곡댐 제방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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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길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망향정에 올랐다가 다시 호안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계단. |
제방을 건너면 중간에 강화유리가 깔린 덱 탐방로를 지나 도로 옆 흙길을 걷는다. 펜션을 잇달아 지나 백안골이 저수지와 합류하는 지점에 백안정 정자가 있다. 여유 있는 코스인 만큼 이곳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쉬어가면 좋다. 백안정을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성수월마을로 가는 도로가 보이는데 몰래길은 도로와 만나지 않고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잠시 뒤 만나는 갈림길에서는 이정표의 철가방극장·망향정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정표 삼거리에서 오른쪽 망향정에 들렀다가 돌아온다. 2층 정자인 망향정에 오르면 나무가 가리기는 하지만 댐까지 물에 잠긴 옛 마을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갈림길로 돌아와 철가방극장 쪽으로 가면 안산정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철가방극장 방향으로 내려가면 수변길을 걸어 철가방극장에 닿는다. 여기서 그린투어센터는 바로 앞이다.
◆교통편
- 부산역 출발 청도역 간 뒤 버스 타고 풍각정류장 하차, 상수월행 순환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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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길의 막바지이자 성수월마을 초입에 자리 잡은 철가방극장. |
청도 몰래길의 시점이자 종점인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려면 여러 차례 교통편을 갈아타야 한다.
부산에서 청도까지는 열차로 이동해야 한다. 부산역에서 출발해, 구포를 거쳐 청도로 가는 열차가 15분~1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청도역에서 나와 왼쪽에 있는 청도공용버스터미널에서 풍각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풍각행 버스는 15분~1시간 간격으로 수시 운행한다. 풍각정류장에서 성곡1리로 가는 상수월행 풍각순환버스는 운행 횟수가 많지 않다. 오전 7시50분, 10시20분, 오후 2시10분, 6시20분 네 차례 운행한다. 들어가는 버스 기사에게 오후에 나가는 버스가 성곡1리를 통과하는 시간을 미리 물어보는 게 좋다. 풍각에서는 청도로 나간 뒤 다시 열차 편으로 부산으로 돌아가면 된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는 청도군 풍각면 성곡1리 성수월마을 그린투어센터를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하면 된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
글·사진=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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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곡지 버드나무, 유등리 복숭아- 2018-04-18
남도의 매화로 시작한 봄꽃 구경은 산수유와 벚꽃을 거쳐 이제 막바지에 가까워졌다. 추위는 언제 가시고 꽃은 언제 피는지 고대하던 때가 오래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봄은 반절이나 지나고 낮엔 더위가 신경 쓰일 때다. 봄은 금세 가고 꽃은 쉬 진다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은 꽃을 찾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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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핀 분홍 복사꽃은 바라만 봐도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경북 경산시 용성면 도덕리의 복사꽃밭에 핀 노란 민들레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
매화나 산수유, 벚꽃보다 한결 강렬한 색깔의 복사꽃이 농촌 들판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경북 남동부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하다. 몇 달 뒤 복숭아는 가까이 과일가게에서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지만 복사꽃 구경은 몸소 발품을 팔아야 한다. 부산에서 멀지 않은 경북 영천 경산 청도로 복사꽃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골짜기 가득 분홍, 영천 구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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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은 근래 와인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원래는 복숭아가 유명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남쪽 끝 경산과 마주한 대창면 구지리는 복사꽃마을로 이맘때면 사진 촬영대회가 열리기도 할 정도로 화사한 분홍 복사꽃의 향연을 즐기려는 이의 발길이 이어진다.
봄의 운치를 느끼려 경부고속도로 영천IC에서 남하하는 대신 서울산IC에서 내려 운문령과 운문호를 거쳐 가는 북행 코스를 잡았다. 운문호 서북단에서 갈라지는 919번 도로를 타고 경산시의 동쪽 용성면 소재지를 지나 한참 오르막길을 달리다가 고개를 넘어서면 KTX 선로 너머 완만한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구지리 마을이 펼쳐진다.
좁은 도로를 따라 구지리 마을회관으로 내려가는 도로 양옆이 모두 꽃밭이다. 멀리 내려갈 것도 없이 철길 아래 구지신저수지 주변이 포인트다. 완만한 사면에 아직 꽃망울을 달고 있는 나무와 이미 활짝 피어나 짙은 분홍을 뽐내는 나무가 섞여 있다. 구지리는 원체 한적한 동네라 복사꽃 철이라도 가끔 찾아오는 단체관광객 버스만 아니라면 번잡하지 않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2차로 도로를 따라가며 도로 양쪽에 흐드러진 복사꽃을 바라본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날려와 얼굴을 치고 간다. 각각 복숭아마을, 복사꽃마을이라 글귀를 새긴 두 장승이 낯선 이를 반긴다.
■반곡지 버드나무와 복사꽃, 경산 반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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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시 대창면 구지리 마을회관 주변 도로에서 관광객들이 활짝 핀 복사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
구지리에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경산 땅에 들어선다. 일부러 찾을 정도는 아니라도 경산시 자인면을 거쳐 남산면 반곡리의 반곡지로 가는 길 주변에서 쉽게 복숭아밭을 볼 수 있다. 잠시라도 시야에서 복사꽃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복사꽃 천지다. 자인면 소재지에서 925번 도로를 타고 상대온천으로 가다가 반곡지로 가는 길로 접어드니 좁고 구불거리는 길인데도 차량 통행량이 많다. 한 굽이 돌아 살짝 내리막길을 가면 왼쪽으로 비켜 반곡지가 눈에 들어온다. 제법 넓은 주차장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이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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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리 복사꽃마을에서 선명한 분홍색을 자랑하는 복사꽃. |
반곡지 입구 정자 주변 밭에 핀 복사꽃이 반긴다. 하지만 절정을 향해 달리는 구지리에 비교하면 이곳 반곡리의 복사꽃은 이미 끝물로 가고 있다. 수년 전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세간에 이름을 알린 반곡지는 사실 복사꽃보다는 둑길의 왕버들 노거수가 사계절 그림 같은 풍광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맘때는 연녹색 이파리, 한여름에는 무성한 초록의 잎, 가을에는 갈색의 단풍,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가 수면에 반영을 드리운다. 기왕이면 바람이 불지 않는 날 가면 잔잔한 수면에 비친 왕버들의 반영을 감상할 수 있다.
■감만큼 유명한 복숭아, 청도 유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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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시 남산면 반곡지의 왕버들. |
청도반시로 잘 알려진 청도에서 감만큼 흔히 만날 수 있는 게 복숭아다. 반곡지에서 차를 돌려 나와서는 925번 도로에 이어 25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향해 청도 땅으로 들어선다.
화양읍에서 25번 도로를 벗어나 용암온천과 청도프로방스를 지나 고갯마루를 넘으면 남쪽으로 향한 완만한 산비탈에 유등리 복사꽃마을이 자리 잡았다. 이곳은 내리막길인 데다가 길은 구불구불하고 차량 통행은 잦아 차를 세우고 꽃구경을 하기가 만만찮다. 여름이면 도로 주변의 농장마다 좌판을 차리고 복숭아를 팔 테지만 지금은 복사꽃을 보려 잠시 속도를 늦추면 여지없이 경적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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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대사의 탄생지로 전하는 경산시 자인면 제석사. |
유등리는 반곡리보다 한참 남쪽이고 남서향이지만 오히려 개화는 조금 늦다. 특별한 포인트는 없지만 2차로 도로를 벗어나면 어디든 복사꽃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마을에 접한 노산못 주변에서는 발아래 밭의 복사꽃뿐만 아니라 멀리 맞은편 비탈을 분홍으로 물들인 복사꽃밭도 조망할 수 있다. 마을 바로 아래의 개울을 따라 연꽃으로 유명한 혼신지로 가는 길 주변도 멀리 또 가까이 복사꽃이 지천이다.
# 주변 볼거리
- 천연림 ‘경산 자인의 계정 숲’
- 원효대사 탄생전설 ‘제석사’
- 청도읍성 등 숨은 명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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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유 수종으로 된 보기 드문 천연림인 자인면 계정 숲. |
경북 영천시 대창면 구지리에서 반곡지로 가는 도중에 경산시 자인면 소재지를 거쳐 간다면 계정 숲을 들러보자. ‘경산 자인의 계정 숲’이라 불리는 이 숲은 자인면 소재지의 남서쪽 끝부분 야트막한 언덕에 조성돼 있다. 이팝나무와 느티나무, 참느릅나무 등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나라 고유 수종이 주를 이루지만 수백 년 동안 훼손 없이 보존돼 온 보기 드문 천연림이다. 여느 숲처럼 꾸미지 않고 최소한의 손길로 보존하는 게 매력이다. 외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20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자그마한 숲이지만 자인현감 등의 공덕비, 왜구를 물리친 것으로 전하는 한장군의 묘, 시중당, 사당인 진충묘가 있어 함께 찾아볼 만하다. 자인면 사무소 근처에는 원효대사 탄생지로 전하는 제석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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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인 도주관과 보물 석빙고 등이 있는 청도군 화양읍 청도읍성. |
유등리 복사꽃마을이 있는 청도 화양읍에는 청도읍성이 있다. 청도읍 사무소가 있는 언덕 위 청도읍성에는 조선 시대 중기에 세운 객사인 도주관이 있다. 도주는 청도의 옛 이름이다. 도주관 경내에는 예전 도로변에 있던 대원군 척화비를 옮겨 세웠다. 도주관에 인접한 화양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는 동헌이 있다. 화양초등학교에서 또 비슷한 거리를 가면 청도향교다. 복원공사 중인 청도읍성 옆을 따라가면 보물로 지정된 청도 석빙고도 볼 수 있다.
글·사진=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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