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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冬至

추연욱 2017. 12. 21. 15:36



동지

 

 

동지섣달 긴긴 밤에 앉았으니 님이 오나,

누웠으니 임이오나. 기름불을 벗을 삼고,

담뱃대를 일을 삼고, 밤새도록 아니 자도

임도 잠도 아니오네.

(경북 의성 민요)

 

1. 음력 11월은 동짓달이다.

동짓달은 중동 또는 지월이라고도 한다.

중동이란 동짓달이 겨울의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지월은 이 달에 동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동짓달 밤은 길고도 춥다.

그래서 문학작품에서는 예로부터 고독과 그리움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다.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둘로 잘라라는 세련된 언어로 표현된 시도 있지만,

위에 인용한 민요처럼 이처럼 민중들도 지루한 밤 잠못 이루고 그리움에 젖어든 정서를 소박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동짓달이 되면 민간에서는 곧 다가올 설빔을 위해 여인들은 분주히 길쌈을 했다.

 


2. 동지

 

동지는 명일이라 一陽이 생하도다.

時食으로 팥죽 쑤어 隣里에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 짧아 덧이없고 밤 길기 지루하다.

<농가월령가>

 

동지는 24절기 가운데 22번째 절기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다.

동짓날은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에 위치한다. 그래서 양력 1222일이나 23일 무렵에 든다.

 

북반구에서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낮이 가장 긴 하지와 반대이다.

태양이 이 날부터 북상을 시작하므로 해가 길어진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동지는 음이 극에 이르는 날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날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이며,

양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날로 생각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새카만 까마귀가 밝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역경>에서 12의 순환질서에서 復卦라 하여 동지를 부활의 의미로 생각하였다.




고구려 고분 각저총(씨름무덤) 벽화 三足烏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아폴로의 새 까마귀

 



또 옛 사람들은 동지를 새해 첫날이라 생각해 축제를 벌이고 태양신에게 제사지냈다.

(1046~256 BC?)나라에서 당(618~907)나라까지 동지는 새해 첫날로 삼아 천지신과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존장, 임금과 스승, 노인을 모셨고, 황제는 조하를 받고 제후들은 향사를 올렸다.

<사기> 봉선서에는 동지 때 南郊에서 하늘에 제사지냈다[禮天于南郊]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이래 궁궐에서는 동지사라 하여 중국에 사신을 보냈다.

 

관상감(나라의 천문 지리를 맡아보는 관장하는 관청)에서는 다음해의 달력을 만들었다.

황색으로 장식한 黃粧曆과 흰색으로 장식한 백장력을 왕에게 올리면 왕은 同文之寶라는 옥새를 찍어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각 관청의 관리들도 서로 달력을 나누어 주면서 동지를 축하했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다음가는 날로 작은설이라 했다.

동짓날 할머니들은 절에 가서 팥죽불공을 올려 조상의 극락왕생과 자손들에게 사악한 것이 침범하지 않도록 부처님에게 빌었다.

 


3. 동지 팥죽

 

동짓달은 막달이라,

동짓달을 잡아드니,

절기는 벌써 내년이라.

동지 팥죽 먹고 나니,

나이 한 살 더 먹어도

임은 날 찾을 줄 왜 모르노.

(경상북도 안동지방 민요)

 

팥죽은 팥을 삶아 으깨어 체에 걸러서, 그 물에다가 찹쌀을 새알만한 크기의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하므로 새알심이라 했다.

 

경기지방에서는 팥죽을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팥죽을 삼신, 성주신에게 올려 축원하고 솔잎으로 사방에 뿌린다.

 

새알심을 나이 수대로 먹어야 운이 따른다고 하였다.

여기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유래되었다. 또 일꾼들은 팥죽 9그릇을 먹고 나무 9짐을 져야 좋다고 하였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의 뜻이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는 뜻이다.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양()을 상징하는 색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에 벽에 팥죽을 뿌리는 것도 역시 사악한 귀신을 쫓는 주술 행위이다.

 

동지 때 팥죽을 먹는 풍속은 중국 남방, 일본 구주 지방 등에도 있다.

벽사의 의미로 팥죽을 먹던 중국 풍속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502~557)나라 사람 宗懍이 편찬한 책 <荊楚歲時記>,

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돼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는 기록이 있다.

<형초세시기>揚子江 중류지방을 중심으로 1~12월을 월별로 나누어 민간의 생활풍습을 서술한 책이다.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기)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20일 이후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금년 동지는 양력 12월 22일, 음력으로는 11월 초닷새이니 애(기)동지이다.

애동지에는 아이들에게 나쁘다 하여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팥죽을 쑤어 먹이지 않고 팥떡을 먹인다.

또 집안에 괴질로 죽은 사람이 있어도 팥죽을 쑤어먹지 않는다고 한다.

 

초상이 나도 팥죽을 쑤어 이웃에 돌렸다.

굿을 할 때도 萬鉢供養이라 하여 많은 사람에게 팥죽을 나누어 먹었다.

이사하거나 집을 새로 지었을 때도 이웃에 팥죽을 돌려 액땜의 하였다.


고사떡에도 팥을 사용한다.

팥의 붉은색은 양의 색이므로 잡귀를 쫓고,

붉은색은 불을 의미해 재물이 불타오르듯 불어나라는 기원의 뜻이 담겨있다.

 

병이 나면 팥죽을 끓여 길에다 뿌려 병마를 쫓았다.

마을에 돌림병이 돌면 우물물을 맑게 하고 병을 없앤다고 하여 우물에 팥을 넣고 기도했다.

천연두가 돌면 마마신(천연두)이 팥죽을 싫어해 멀리 달아난다고 믿어 집집마다 팥죽을 끓여 먹였다.

팥의 붉은 색이 음기를 쫓는 효과가 있다고 믿은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붉은 고추를 달아두는 것, 새색시의 연지 곤지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적 사고에서 나왔다.

 

삼복에는 더위를 이겨낸다고 하여 팥죽을 먹었는데 이를 伏粥이라 한다.

팥은 다른 곡물에 비해 영양가가 높기 때문이다.

 

팥은 다산과 주술에도 쓰였다.

혼례가 끝나고 신부가 시집 문에 들어설 때 시집 식구들이 신부에게 팥을 뿌린다.


팥은 또 난산을 다스리고 젖이 잘 나오게 한다 하여 잉어나 붕어 등과 함께 푹 고아 산모에게 먹였다.

 

예수님의 탄생일이라 하는 1225일 역시 동지축제를 본뜬 것이다.

로마인들은 1221일부터 31일 사이에 농경신에 대한 축제를 벌였다.

기독교가 로마세계로 전파되면서 초기기독교인들은 당시 농경민족인 로마인의 농경신 축제를 받아들여 크리스마스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25일은 태양이 부활하는 날이라 하여 특별히 기념하였다




 

동지섣달 긴긴 밤에 앉았으니 님이 오나,

누웠으니 임이오나. 기름불을 벗을 삼고,

담뱃대를 일을 삼고, 밤새도록 아니 자도

임도 잠도 아니오네. (경북 의성 민요)

 

1. 음력 11월은 동짓달이다. 동짓달은 중동 또는 지월이라고도 한다. 중동이란 동짓달이 겨울의 한가운데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지월은 이 달에 동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동짓달 밤은 길고도 춥다. 그래서 문학작품에서는 예로부터 고독과 그리움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었다.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둘로 잘라라는 세련된 언어로 표현된 시도 있지만 위에 인용한 민요처럼 이처럼 민중들도 지루한 밤 잠못 이루고 그리움에 젖어든 정서를 소박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동짓달이 되면 민간에서는 곧 다가올 설빔을 위해 여인들은 분주히 길쌈을 했다.

 

2. 동지

 

동지는 명일이라 一陽이 생하도다.

時食으로 팥죽 쑤어 隣里에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 짧아 덧이없고 밤 길기 지루하다. <농가월령가>

 

동지는 24절기 가운데 22번째 절기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다. 동짓날은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에 위치한다. 그래서 양력 1222일이나 23일 무렵에 든다.

 

북반구에서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낮아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 낮이 가장 긴 하지와 반대이다.

태양이 이 날부터 북상을 시작하므로 해가 길어진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동지는 음이 극에 이르는 날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날부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이며 양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날로 생각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새카만 까마귀가 밝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역경>에서 12의 순환질서에서 復卦라 하여 동지를 부활의 의미로 생각하였다.

 

또 옛 사람들은 동지를 새해 첫날이라 생각해 축제를 벌이고 태양신에게 제사지냈다.

(1046~256 BC?)나라에서 당(618~907)나라까지 동지는 새해 첫날로 삼아 천지신과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존장, 임금과 스승, 노인을 모셨고, 황제는 조하를 받고 제후들은 향사를 올렸다. <사기> 봉선서에는 동지 때 南郊에서 하늘에 제사지냈다[禮天于南郊]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이래 궁궐에서는 동지사라 하여 중국에 사신을 보냈다.

 

관상감(나라의 천문 지리를 맡아보는 관장하는 관청)에서는 다음해의 달력을 만들었다. 황색으로 장식한 黃粧曆과 흰색으로 장식한 백장력을 왕에게 올리면 왕은 同文之寶라는 옥새를 찍어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각 관청의 관리들도 서로 달력을 나누어 주면서 동지를 축하했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다음가는 날로 작은설이라 했다.

동짓날 할머니들은 절에 가서 팥죽불공을 올려 조상의 극락왕생과 자손들에게 사악한 것이 침범하지 않도록 부처님에게 빌었다.

 

3. 동지 팥죽

 

동짓달은 막달이라,

동짓달을 잡아드니,

절기는 벌써 내년이라.

동지 팥죽 먹고 나니,

나이 한 살 더 먹어도

임은 날 찾을 줄 왜 모르노. (경상북도 안동지방 민요)

 

팥죽은 팥을 삶아 으깨어 체에 걸러서, 그 물에다가 찹쌀을 새알만한 크기의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하므로 새알심이라 했다.

 

경기지방에서는 팥죽을 먼저 사당에 올려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내고 각 방과 장독, 헛간 같은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는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팥죽을 삼신, 성주신에게 올려 축원하고 솔잎으로 사방에 뿌린다.

 

새알심을 나이 수대로 먹어야 운이 따른다고 하였다. 여기서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유래되었다. 또 일꾼들은 팥죽 9그릇을 먹고 나무 9짐을 져야 좋다고 하였다.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의 뜻이고 집안 곳곳에 놓는 것은 집안에 있는 악귀를 모조리 쫓아낸다는 뜻이다.

이것은 팥의 붉은색이 양()을 상징하는 색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에 벽에 팥죽을 뿌리는 것도 역시 사악한 귀신을 쫓는 주술 행위이다.

 

동지 때 팥죽을 먹는 풍속은 중국 남방, 일본 구주 지방 등에도 있다. 벽사의 의미로 팥죽을 먹던 중국 풍속이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502~557)나라 사람 宗懍이 편찬한 책 <荊楚歲時記>, “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돼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는 기록이 있다. <형초세시기>揚子江 중류지방을 중심으로 1~12월을 월별로 나누어 민간의 생활풍습을 서술한 책이다.

 

동지가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20일 이후에 들면 노동지라 한다. 애동지에는 아이들에게 나쁘다 하여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팥죽을 쑤어 먹이지 않고 팥떡을 먹인다.

또 집안에 괴질로 죽은 사람이 있어도 팥죽을 쑤어먹지 않는다고 한다.

 

초상이 나도 팥죽을 쑤어 이웃에 돌렸다. 굿을 할 때도 萬鉢供養이라 하여 많은 사람에게 팥죽을 나누어 먹었다.

이사하거나 집을 새로 지었을 때도 이웃에 팥죽을 돌려 액땜의 하였다. 고사떡에도 팥을 사용한다. 팥의 붉은색은 양의 색이므로 잡귀를 쫓고, 붉은색은 불을 의미해 재물이 불타오르듯 불어나라는 기원의 뜻이 담겨있다.

 

병이 나면 팥죽을 끓여 길에다 뿌려 병마를 쫓았다. 마을에 돌림병이 돌면 우물물을 맑게 하고 병을 없앤다고 하여 우물에 팥을 넣고 기도했다.

천연두가 돌면 마마신(천연두)이 팥죽을 싫어해 멀리 달아난다고 믿어 집집마다 팥죽을 끓여 먹였다. 팥의 붉은 색이 음기를 쫓는 효과가 있다고 믿은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붉은 고추를 달아두는 것, 새색시의 연지 곤지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적 사고에서 나왔다.

 

삼복에는 더위를 이겨낸다고 하여 팥죽을 먹었는데 이를 伏粥이라 한다. 팥은 다른 곡물에 비해 영양가가 높기 때문이다.

 

팥은 다산과 주술에도 쓰였다. 혼례가 끝나고 신부가 시집 문에 들어설 때 시집 식구들이 신부에게 팥을 뿌린다. 팥은 또 난산을 다스리고 젖이 잘 나오게 한다 하여 잉어나 붕어 등과 함께 푹 고아 산모에게 먹였다.

 

예수님의 탄생일인 1225일 역시 동지축제를 본뜬 것이다. 로마인들은 1221일부터 31일 사이에 농경신에 대한 축제를 벌였다. 기독교가 로마세계로 전파되면서 초기기독교인들은 당시 농경민족인 로마인의 농경신 축제를 받아들여 크리스마스로 정한 것이다.

그리고 25일은 태양이 부활하는 날이라 하여 특별히 기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