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깃발자료

무장사지와 무장산-2010년 3월 7일

추연욱 2010. 3. 8. 13:57

무장사지와 무장봉 - 2010년 3월 7일

 

친구 오솔길이 젊은 친구 천두억 선생과 무장봉(624m)에 가자고 찾아왔다.

아침에 부슬부슬 비가 왔다. 강원도 영동지방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단다.

금년 봄에는 유난히 눈도, 비도 많다. 지난 3주 동안, 남덕유 산행, 지리산 둘레길, 문수산 산행 내내 눈이나 비를 맞으며 걸었다.

 

언양휴게소에서 잠깐 쉬면서 바라보니 고헌산쪽 능선이 온통 하얗게 덮여있다.

경주에 가까워지자 금오산 수리봉에도 역시 정상부가 하얗다. 

어쩌면 무장산도 눈에 덮여있을 것이다. 

 

11시에 무장산 들머리 법평사 근처에 닿았다. 

 

 

회색 하늘에는싸락눈이 간간히 흩날리고 있었다.

무장사지 가는 이 길은 낯설지 않은데도 늘 새롭다.

 

골짜기에 물이 많아 건너는데 더러 성가시기도 했다.

  

 

 

 

 

鍪藏寺址는 눈에 덮여있다.

눈으로 덮인 무장사지는 여름에 볼 때보다 더 쓸쓸하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654~661 재위)이 백제를 정복한 후,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여 병장기를 이곳에 묻었기 때문에 '무장'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 기록은 믿기 어럽다. 고구려를 정벌해야 하는 통일 프로젝트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무기를 감춘 것은 어쩌면 고구려에 대한 위장전략인지도 모른다.

정말 평화를 지향했다면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무장사지 삼층석탑은 단정하고 예쁘다. 그러면서도 상승감도 안정감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붕돌은 얇고 날렵하여 예쁘지만 어딘지 섬약하여 말기의 퇴폐적인 양식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초기의 웅건한 맛은 이미 사라졌다. 신라도 탑도 이제 말기에 접어들고 있다. 

 

 

실의 원찰에서만 조성할 수 있는 쌍귀부, 거북의 등과 발 역시 단정하고 예쁘지만 힘치게 도약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비받침에 새긴 12지신은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어럽고, 비머리(이수)의 제액은 읽을 수도 없다.

거북 2마리의 목은 무참히 잘려나갔다. 어떤 못된 사람이이런 짓을 했을 것이다.

 

 

  

 

무장사지에서 나와 계곡을 따라 오른다.

여기서부터는 온통 눈길이다. 나무도 길도 눈에 덮여있다. 

 

봄을 맞이하던 버들강아지도 느닷없는 눈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렇다고 눈을 두려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 

 

 

 

 

  

 

  

 

 

  

 

능선에 올라서면 시야가 확 트이는넓은 평원과, 산들에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도 보인다.

 

이곳이 옛 오리온 목장 자리이다.

오리온제과에서 만든 반짝반짝하는 빨간색, 초록색 사탕을 먹어본 적이 있고,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하는 아름다운 CM 송을 좋아하여, 오란씨라는 쥬스를 마시기도 했다.

 

무장봉 억새지대가 펼쳐진다. 매마른 억새는 거센 바람을 맞아 서로 몸을 기대며 서걱인다.  

 

 

 

오른쪽 길로 200m 올라가면 무장봉이다.

 

이곳이 무장봉이다. '봉'은 '산'에 포함된 일부인데 이를 포함한 산이 무엇인지는 는 알 수 없다.

  

 

 

무장사지와 무장봉-2010년 3월 7일

 

 

 

 

경주에서 이런 상고대를 보다니,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다.

내가 다른 곳을 찾아다니는 동안 남들은 모두 이미 보았을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다.

  

 

 

정상에서 내려와 암곡으로 가는 길이다.

 

 

 

 

 

 

그윽한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가파른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와야 한다.

 

11시에 법평사가 있는 이곳에서 시작해 3시30분에 이곳으로 돌아왔다. 12.5km쯤 걸었다.

산행이라 할 것도 없다. 마음 편하게 걷을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