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전국정기도보] [2017년 3월 11일~12일] 영남알프스 둘레길~사연댐둘레길

추연욱 2017. 3. 13. 12:12




[전국정기도보] [2017년 3월 11일~12일], 봉화산, 영남알프스 둘레길~사연댐둘레길





작천정 입구 주차장, 9시 35분.




오늘은 맑음.






"人乃天" 바위




"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누가 이 글을 새겼을까?

새김의 깊이가 깊은 곳은 5cm가 넘어 보인다.

東學과 관계있는 어떤 집단이 새겼을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로서는 알아볼 방법이 없다.







































봉화산, 10시 20분.




























































작아도 가파르고 다부진 산, 봉화산 산행을 마쳤다.

전국정기도보 공식행사에 앞서 부산방만의 행사다.



점심 먹으러 간다. 11시 20분.




냉천가의 올갱이국(경상도 사투리로 고디국)밥




길가에 매화꽃도 피었다.




전국정기도보 만나는 곳 '보림마을'에 왔다. 12시 40분.








1시 30분, 다들 모였고, 행사를 시작한다.






























삼거리임도, 4시



상차리로 내려가는 길,

선필을로 넘어가는 길,

소호령으로 올라가는 길 등 세 갈래로 나뉜다.




상차리경로당, 4시 15분.








상차리마을, 4시 20분.










길가에 핀 매화
















여기서 오늘 도보는 끝났다.

버스를 타고 우리들의 숙소 오케이산장으로 간다.







5시 30분, 오케이산장에 왔다.








저녁을 먹고,

인도행 화합의 밤.







































































오늘 하루 그렇게 지나갔다.

나는 느긋하게 즐기며 걸었다.


종일 몸도 마음도 바쁘고 긴장 속에 지내신 분,

뒤에서 부엌 일 해 주신 분들을 생각하며.





3월 12일, 새 날이 밝았다.

오늘도 맑음.










9시 30분, 울산대곡박물관에 왔다.







박물관 마당에 산수유가 활짝 피었다.



봄이 아주 가까이 온 것 같다.






















대곡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 천전리각석으로 간다.




천전리각석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은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太和江 지류인 대곡천 상류(지금은 사연댐 최상부) U자 모양으로 굽어도는 돌출부에 있다.

 

이곳의 양쪽 언덕은 모두 절벽인데 해발 265m의 산들이 가로막아 아늑한 굴 같은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그 사이로 대곡천이 흐른다.

이 일대의 지층은 주로 낙동강의 퇴적활동과 관련된 육성층이다. 지질은 경상계의 신라통으로 중생대 쥐라기 말엽부터 백악기 초엽에 형성된 고동색[楮色] 또는 회색 켜버위로 덮혀있다. 주위에는 변성퇴적암, 안산암, 화강암 들도 분포되어 있다.

 

이곳은 동해의 난류가 흘러 따뜻한 편이며 강우량도 많아 멧돼지, 산양, 노루, 토끼 같은 산짐승이 번성하였고, 송어, 은어 같은 바닷고기와 붕어 같은 민물고기도 풍부하였다. 그리고 낙동강 연안이어서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2km쯤 서쪽에는 언양분지로 통하는 평야가 있다. 그런 까닭에 이곳에는 산짐승, 어류, 농산물, 축산물 등이 비교적 풍부한 입지조건을 갖춘 곳으로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활용되어 온 곳이다.  


바위벽은 동북으로 놓여 동동남을 향하고 있다. 앞으로 약 15° 기울어진 높이 2.7m, 너비 약 9.5m의 편암 바위벽에 그렸다.

바위면은 건조하여 이끼가 끼지 않는다. 또 바위면이 앞으로 기울어져 눈, 비를 피한다.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내용의 조각이 새겨져 있어 기법과 양식 및 주제에 따라 크게 2군으로 구별된다.

즉 상단부의 기하학적인 원, 동심원, 渦券, 동식물, 인물문 등 굵게 타격으로 음각한 문양이 있다. 기하학 무늬는 마름모무늬, 둥근무늬, 우렁무늬, 물결무늬, 가지무늬 등 다양하며, 각 무늬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형되고 있다.

동물상은 왼쪽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데 사슴, 호랑이, 기다란 이형 동물이 주로 암수 두 마리가 마주 보면서 서있다. 하단부에는 동물, 인물 등의 線刻紋 및 명문이 있다.


 

 

조각은 상부는 바위면을 쪼아 무늬를 만든 후 다시 나무나 돌로 간 쪼아갈기 기법이고, 하부는 가는선으로 그어 조각한 수법, 즉 긋기이다. 이러한 기법의 차이는 또한 양식과 내용, 연대 등에도 다른점을 보여 준다.

편년상에 있어서 이 각석의 조각양식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기하학문양, 둘째, 상단부 동물상, 셋째, 하단부의 선각상 등이다. 기하학적 도형이 신석기시대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주로 청동기시대로 보고 하한선을 잡으며, 선각그림들은 명문과 함께 법흥왕 대인 6세기경을 중심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1. 평면그림

평면그림은 맨 처음 바위면 윗부분 전체에 그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뒤에 기하무늬가 덧그려져 남아있는 그림이 적다. 


평면그림은 뒤에 선그림을 그린 주민들에 의해 많이 파손되었다. 반구대 평면그림과 수법 · 형태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므로 반구대 평면그림을 그린 집단보다 앞서거나 같은 시기에 사냥 집단 가운데 좀 작은 집단이나 이웃 집단이 와서 겨울철 사슴사냥을 하면서 사슴 등의 번식과 사냥의 성공을 비는 어떤 의식을 행하였던 곳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람 얼굴에 사슴의 몸을 하고있다.

사슴을 가장한 사냥꾼일 것이다. 


오른쪽 남자가 사슴을 기르면서 같이 들을 거니는 당시의 생활모습을 그렸을 것이다. 꽃은 길가에 핀 꽃일 것이다.




지느러미가 여러 개 있어 고래일 가능성이 많다. 


순록 암수 한쌍을 같이 그린 것으로 보아 순록의 번식을 빌었던 주술 · 종교적 그림으로 생각된다.




2. 굵은선 그림

굵은선 그림은 평면그림보다 나중에 덧그려진 것으로 주로 기하무늬 등 뜻을 알 수 없는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그림들은 평면그림 위에 덧그려진 그림들로 평면그림을 그렸던 사람들보다 뒤에 들어온 사람들이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 선그림들은 거의 남자와 여자, 물과 비를 상징하는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남긴 사람들은 농사짓는 일과 관련을 가지고 있던 집단일 것이다. 이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던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농사의 풍요를 빌면서 비가 많이 내리기를 비는 상징물들을 그렸을 것이다. 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 물고기가 잘 잡혀주기를 바라면서 이 선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이 그림들은 농경이 정착되어 가는 초기 즉 농경과 어로를 함께 하는 단계인 청동기시대 그림일 것이다.


 


마름모꼴은 여성을 상징한다.


 


물고기를 앞에서 보고 그린 그림이다.


서 있는 남자. 소년으로 보인다.

 


 

3. 가는선 그림

가는선 그림은 시대가 가장 뒤인 신라시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말을 탄 행렬과 배

아래위로 길게 새긴 것으로 앞으로 가고 있는 행렬을 뒤에서 보고 그린 것이다.

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왜의 사신이거나 아라비아 상인들이 배에서 어디론가 안내되는 행렬로 추측할 수 있다.



 

용 3마리


새이거나 솟대일 것이다. 


 

명문은 을사년에 이루어진 原銘이 있고, 그에 이어 2차로 새겨진 追銘 등 2건이 있다.

이 둘은 글을 쓴 주체가 같고 또 같은 일을 시차를 두고 회상하며 기록한 것이다.

원명은 법흥왕 15년(525) 沙啄部의 葛文王이 이곳에 행차하여 그린 것이고, 추명은 14년 뒤 법흥왕 26년(539) 다시 이곳을 찾아 과거에 다녀간 일을 기록한 것이다.

입종 갈문왕은 신라 왕실의 가계가 분화되던 시기에 새로 분화되어 나온 한 가계의 시조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곳은 입종 갈문왕계 세력의 상징적인 장소로 보인다.

특히 追銘은 왕과 왕비를 포함한 신라 사회의 일면을 알려주는 자료로, 약 300자 가량이 보이고 있다.

선각그림과 명문들은 이 서석을 순례한 신라인들이 기념으로 적은 글과 행렬도들이며, 이외에 새나 용도 선각으로 그렸다.

주변에 永郞, 金郞, 貞光郞 등 이름이 보이는데 화랑임을 알 수 있다. 당시 화랑들은 전국 곳곳의 명산승지를 돌며 심신을 수련했던 일을 생각하면 이곳을 다녀간 화랑들이 자신의 이름을 새겼을 것이다.






















파도 화석이 있는 이 어름이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곳이다.




공룡발자국 화석은 내 걸음이 늦어 찾아볼 겨를이 없었다.



2011년 12월 8일 찍은 사진이다.




암각화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공룡발가죽화석



공룡발자국(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12호)

8m, 몸무게 4t으로 9천만 년 전 전기 백악기에 살았다. 발자국 크기는 길이 32cm, 넓이 33cm 발가락 제1지는 퇴화하였다. 2, 3, 4지만 남아있다.

천전리 앞은 전기 백악기의 지층이 발달했다. 이것을 이암펠스혼이라 한다.

이는 무른 땅이 지각 변동으로 열을 받아 당당해진 돌이다.


대곡천에는 여러 장소에서 공룡발자국이 확인되지만,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편이다. 이곳의 공룡발자국은 약 100㎡ 넓이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용각류 팔용과(Brachiosauridae)에 속하는 것(60톤급)과 조각류 이구아나과(Iguanodont)에 속하는 것(고성룡족인Goseongosauripus) 등 24여 개다.

일정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공룡들은 이 일대를 평화롭게 배회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공룡은 2억 2천 5백만년 전에 출현하여 1억 6천만년 동안 살다가 멸종했다.

이곳의 공룡발자국 화석은 약 1억년 전 前期 白堊紀 시대에 살았던 공룡들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공룡들은 亞熱帶 기후 아래 雨期와 乾期가 반복되고 열대 무역풍이 영향을 미치는, 사바나 지역의 河川平野 일대에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식공룡인 고성자우리푸스는 발끝이 둥글다. 키 6m 몸길이 둥근 모양의 구멍을 남겼다.

날카로운 세 개의 발자국은 메칼로자우리푸스의 것이다.














울산암각화박물관, 19시 40분.















圃隱臺








集淸亭



























伴龜書院 知義門


























대곡천 건너 암벽 왼쪽 아래에 반구대람각화가 있다.



바위그림을 보는 건 불가능이고,

이곳의 문화유산 해설사에게 반구대암각화 보전대책을 결정했는지를 물어보았다.

아직 결정하지 못햇다고 한다.


울산은 물이 필요하니 큰 댐이 있어야 하고,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서는 이 바위들이 물에 잠기지 않게 해야하고,




언양읍 대곡마을, 11시 45분.

















대곡마을 ,12시







이런 마을이 "柳暗花明又一村"인가?

















간식거리를 나누어 준다.

물, 약밥 한 토막, 모둠떡 한 토막, 오렌지 한 개, 그리고 또 뭐더라?

완전 땡볕이다.


























































































































2시 55분. 망성교.


오늘 도보는 다 끝났다.

먼저 점심 준비를 해 두었다.


어묵탕과 점심밥.












이틀의 행사를 마무리하는 의식을 한다.

 







행사가 끝나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 한다. 3시 25분.







우리 버스는 3시 45분 이곳을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