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만덕사지, 상계봉
병풍사입구 정류장, 46번만 다닌다. 12시다.
80m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만덕사지 당간지주
* 당간지주 바로 남쪽 밭두렁 위에 알바위가 있다.
바위 이름을 배바위라 한다. 머리는 상계봉을 향하고 있다. 바위 윗부분에 원주를 음각한 알 모양의 원이 마주 보고 있다. 구멍은 모두 7개다. 칠성신과 연관이 있고, 칠석날 밤 이 알터에 좁쌀을 넣고 기도를 드리면 소원을 이룬다는 믿음이 있다.
* 만덕사지 당간지주(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4호)
금당지 서남쪽 200m 아래 도로 건너편 사기마을 당산과 함께 있다. 지금 하나만 있다.
서낭당은 문이 잠겨있다.
이 나무가 서낭나무인 듯하다.
병풍사입구 정류장으로 돌아와서, 육교를 건넌다.
만덕사지
만덕사터에는 새 절이 들어서 있다.
金井山 上鷄峰萬德寺
석축 가운에 다듬은 거석 두 개가 대칭으로 있다.
■ 만덕사지 -
금정산 줄기인 해발 632.8m의 상학산 기슭에 있다. 이곳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자리에 큰 절이 있었음을 여러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절터에는 상하 2단으로 축조된 축대가 있으며, 무너진 앞쪽 축대의 서쪽 벽면 일부를 제외하고 매우 잘 남아있다.
이 절터가 일찍부터 알려지고 금당터가 이 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축대 때문이다. 축대는 자연 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해 쌓았는데, 앞뒤로 축대를 쌓고 그 내부에 흙을 채워 축대 위쪽을 평평하게 고루었다. 축대의 벽면은 자연석을 일부 가공하거나 그대로 사용하였고, 대부분 가로쌓기 수법으로 쌓았다. 돌의 크기는 1m 내외가 보통이며, 2m가 넘는 큰 것도 다수 있다. 앞쪽 축대는 길이 66m, 높이 4.5m이고, 뒤쪽 축대는 길이 65m, 높이는 3.5m 정도이다.
앞쪽 축대 앞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계단시설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현재 이용되고 있는 계단 위치에서 금당터로 올라가는 곳에 계단 시설이 설칟되어 축대와 조화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충정왕 3년(1361) 창건된 절로 추측한다. 원나라에서 공민왕 1년(1352) 충혜왕의 서자 釋器를 왕으로 옹립하려 하여 반대세력과 충돌이 발생하자 공민왕이 석기의 머리를 깎아 이 절에 유폐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의 왕손들이 이 절로 피난했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의 박해로 성을 바꾸어 거제도와 합천 등지로 은둔했다.
선조 25년(1592) 조일전쟁 때 사명대사 유정이 이 절에서 의승군을 집결시켜 유격전을 전개하여 동래와 다대포 지역의 방위를 도왔으나 희생이 컸다.
이때 왜군의 방화로 전소하여 폐사되었다.
1990년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옛터 등을 발굴하였다. 절터 중앙에 장방형의 축대가 완전하게 남아있다. 이곳이 금당지일 것이다.
이 절로 인해 마을 이름이 만덕동이 되었고, 절터 바로 옆 마을은 사기마을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대웅보전
"山神之位"라 쓴 이 비석은 1995년 6월에 박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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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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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2시 25분.
만덕갈림길, 3시.
상계봉 가는길
상계봉에서
다시 갈림길, 3시 50분.
만덕1동 청룡약수터 체육시설, 3시 55분.
4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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