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산행 후기

달음산, 척판암 · 백련암 · 장안사/ 2024년 6월 5일

추연욱 2024. 6. 6. 06:10

 

 

달음산, 척판암 · 백련암 · 장안사/ 2024년 6월 5일

 

 

 

옥정사 주차장, 7시 45분.

 

 

 

 

달음산 : 가정군 일광면 원리 산 141-2

달음산(588m)은 기장8경 가운데 제1경인 명산으로,

"천 명의 성인이 이곳에서 나와 (기장이)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다."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날씨가 좋을 때 정상에 오르면 남부 동해안의 절경과 기장군 일대가 시야를 사로잡는다.

급경사가 많아 초보자가 오르기 쉬쉽지 않지만, 산꼭대기의 닭벼슬 모양을 한 기암괴석과,

산 정상에서 가장 높은 취봉, 좌우의 문래봉과 옥녀봉, 그리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절벽이 보여주는 장관은,

산행의 고단함을 잊게 한다.

 

(표지판의 설명을 옮겨 적었다., 편집자)

 

 

 

 

 

 

 

 

 

 

 

 

 

 

 

 

달음산 제1쉼터, 8시 25분.

 

 

 

갈미산,8시 35분.

 

 

 

 

 

 

 

 

달음산 제1쉼터로 돌아왔다., 8시 45분.

 

 

 

 

 

 

 

 

 

 

 

 

사람주나무

 

 

 

 

 

 

 

 

 

 

 

 

 

 

 

 

 

 

 

 

 

 

 

 

 

 

 

 

 

 

 

 

 

 

 

 

 

 

 

 

 

 

 

 

 

 

 

 

 

 

 

 

 

 

 

 

 

 

 

 

달음산, 10시 15분.

 

 

 

 

 

 

 

 

 

 

 

 

 

 

 

 

 

 

 

 

 

 

 

 

 

 

 

 

 

 

 

 

 

 

 

 

 

 

 

 

 

 

 

 

 

 

 

 

 

 

 

 

 

 

 

 

 

 

 

 

 

 

 

달음산 명품 소나무

 

 

 

 

 

 

자귀나무

 

 

 

 

 

 

 

월음산 안부, 12시 35분.

 

 

 

 

 

 

 

 

 

 

 

 

 

 

 

옥정사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12시 55분.

 

 

 

 

달음산 산행 5km

 

 

 

 

 

 

척판암

 

 

 

 

 

 

 

 

 

컴프리

 

 

 

 

 

 

 

 

 

 

 

 

 

 

"뿌리의 길"은 여기에도 있다.

 

 

 

 

 

 

 

 

쪽동백 어린 나무

 

 

 

 

 

 

 

척판암

 

 

 

 

 

 

 

 

 

 

 

 

시들어 가는 불두화

 

 

 

 

 

 

 

 

 

 

 

 

 

 

 

 

 

 

 

불광산 · 척판암의 유래

척판암에서 원효대사님이 선정 중에 혜안으로 살펴보니,

당나라 종남산 태화사의 천 명 대중이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알고,

'신라의 원효가 판자를 던져 대중을 구한다 海東元曉擲板救衆'라고 쓴 현판을 불가사의한 신통력으로,

태화사에 날려 보냈다.

그곳 대중들이 공중에 떠있는 현판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법당에서 뛰 어나와 보는 순간,

절 뒷산이 무너져 큰절이 매몰되었다. 이 인연으로 목숨을 구한 천 명의 중국 승려들이 신라 척판암으로 와,

원효스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원효스님은 그들이 머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이르자,

산신이 마중나와 현재의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에 원효스님은 대둔사를 창건하고 상 · 중 · 하 내원암을 비롯 89개 암자를 세워 1천 명을 거주시켰다.

 

그리고 천성산 상봉에서 <화엄경>을 강론하여 1천 명의 승려를 득도하게 하였다.

이때 <화엄경>을 설한 자리에는 화엄벌이란 이름이 생겼고,

중내원암에는 큰 북을 달아 놓고 산내의 모든 암자가 다 듣고 모이게 했으므로,

집불봉이란 이름이 생겼으며 1천 명 모두 성인이 되었다 하여 천성산이라 하였다 한다. 

 

(설명 표지 글을 옮겨 적었다. 편집자)

 

 

 

 

 

 

 

백련암

 

 

 

 

 

 

 

 

라나스덜꿩나무

 

 

 

 

 

 

 

 

 

 

 

 

 

 

 

 

 

 

 

 

 

장안사 천왕문

 

 

 

 

 

 

 

 

 

 

 

 

 

 

 

 

사천왕상의 형상은 정해진 것이 없다.

다만 <다라니집경>의 영향으로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비사문)만은 반드시 탑을 들고 있어 기준이 된다.

따라서 북쪽 사천왕이 배치된 곳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동 ·  · 서의 사천왕이 배치된다.

 

지물은 일정하지 않다.

대체로 동방 지국천은 왼손에는 칼, 오른손에는 보주,

남방 증장천은 , 서방 광목천은 붉은 새끼줄과 금강저를 든다.

 

 

북방 다문천왕(Vaiśravaņa)은 수미산 북쪽에 살며 북방을 수호하고 재복, 부귀를 맡아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보통 탑을 든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다문천은 쿠베라라는 별명이 있다.

쿠베라는 <베다>에서는 악마족의 왕이다. 서사시 시대부터 세계를 수호하는 신으로 등장한다.

Vaiśravaņa라고도 하여 간다르바와 야크샤, 다바다[羅刹]의 왕으로 히말라야에 살며,

부인은 야크샤, 차르비, 카우벨레이다.

현재는 부귀와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민간에서 신앙한다.

큰 북처럼 배가 불뚝 나왔고, 손에 돈지갑과 곤봉을 든 거북이 혹은 사람이 탄 상이다.

 

현존하는 사천왕상은 대부분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예에 의하면,

지국천왕은 비파, 증장펀왕은 보검, 돵목천왕은 용과 여의주 또는 새끼줄,

다문천왕은 탑을 받쳐든다.

 

 

 

 

 

 

 

 

 

 

 

 

 

 

 

 

보호수 단풍나무

 

 

 

 

 

 

 

 

 

 

 

 

 

 

 

 

 

보물장안사 대웅전

정면, 측면 3칸 팔작지붕의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본존불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여래, 왼쪽에 약사여래의 삼세불을 모셨고,

불상 뒤에는 조선 철종 7년(1856)에 제작된 석가영산회상도(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가 모셔져 있다.

장안사 대웅전은 임진홰란 때 불탔던 것을 조선 효종 8년(1657) 학능, 충묵 등에 의해 중창되었다.

앙곡 昂曲이 강한 지붕, 정면과 배면의 공포 짜임새, 보개 寶蓋 천장 등 양식적 특징을 지닌 건물이다.

이 건물은 건물 폭에 비해 건물 자체의 높이가 높고 처마가 깊게 돌출한 팔작지붕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평면의 규모에 비해 웅장한 느낌을 준다.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화려한 수법이 구사된 뛰어난 건축 문화재이다.

 

 

 

 

보물 기장 장안사 석조 석가여래삼존불좌상

장안사 석조 석가여래삼존불좌상의 재질은 불석(제오라이트)으로,

네모난 얼굴, 미소를 띤 온화한 상호, 두꺼운 법의와 간략한 옷주름 등,

17세기 불상의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얼굴에서 코와 입술 사이의 인중이 길고 뚜렷한 점,

윗입술과 인중 부위가 돌출된 모습, 목 아래로 쳐져 있는 삼도 표현, 왼쪽 소매 자락의 꽃잎 형태,

석조 제질의 불신에 양손은 별도로 나무를 조각하여 까운 수법 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장안사 석조 석가여래삼존불좌상은,

1659년(순치 16년) 화원 녹원 鹿元을 비록하여 편수 片手명자 明紫, 학륜 學崙, 각인  覺仁 등이 참여하여 조성하였다.

 

 

장안사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장안사는 신라 문무왕 13년(673) 원료대사가 창건하여 쌍계사라 했다가,

애장왕(800~ 809)이 다녀간 후에 장안라 개칭하였다 한다.

 

장안사는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죄우에 명부전, 응진전이 있고,

명부전, 응진전과 나란히 요사채가 배치되어 있으나, 요사채 들은 약 30여년 전에 신축된 것이며,

원래는 대웅전을 마주보고 강당이 배치되어 대웅전, 응진전, 명부전, 강당이 대웅전 앞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ㅁ자형 배치 형식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힌 전각 구성과 배치 형식은 조선 중 · 후기 통불교계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으로,

이른마 산지중정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면 측면 삼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계 양식인 대웅전에는,

중앙에 본존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여래, 왼쪽에는 약사여래의 보물 삼세불이 모셔져 있고,

불상 뒤에는 조선 철종 7년(1856)에 제작된 석가영산회상도(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가 모셔져 있다.

 

장안사 대웅전은 임진홰란 때 불탔 것을 조선 인조 16년(1638) 태의대사가 중건하였으며,

다시 효종 5년(1654) 학능, 충묵스님 등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2009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 조사 때 발견된 종도리 묵서명을 통해,

효종 8년(1657) 학능, 충묵 등에 의해 중창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도,

이후 영조 20년(1744) 서까래를 수리하는 중수가 있었으며,

1947년과 1951년 소규모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장안사 지금의 대웅전은 몇 차례 수리등으로 인해 공포 등 외관에 다소 변화가 있었으나,

주요 구조 부재와 단청 등은 1657년 중창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문선 등에도 고식이 남아 있어 건축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건축물로 평가된다.

 

창호는 격자살과 교살이라는 단 두 가지 창살기법으로 중심성을 강조하는 입면구성의 기법과,

각 창호의 윗 부분에 격자살마다 한 칸 건너 원형의 꽃살을 장식하여 소목 공예의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앙곡이 강한 지붕, 정면과 배면의 공포짜임새, 보개 천장 등 양식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장안사 대웅전은 건물 폭에 비해 건물 자체의 높이가 높고 처마가 깊게 돌출한 팔작지붕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평면의 규모에 비해 웅장한 느낌을 준다.

보존 상태가 대단히 양호할 뿐 아니라 큰 규모가 아닌 사찰의 주불전인 대웅전으로서는,

화려한 수법이 구사된 뛰어난 건축 문화재이다.

 

1793년 5월 23일 경상남도 지정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된 후,

1995년 가장군이 부산광역시로 편입된 후인 1995년 12월 15일,

부산광역시 지정 기면불 제 37호로 지정 · 보존되어 오다가,

부산 지역에서 런립 연대가 가장 오래된 다포식 건축물로서 역사적 ·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2년 8월 6일 보물 제1771호로 승격되었다.

 

설명 표지 글을 옮겨 적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