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안현미, 와유 臥遊
추연욱
2015. 10. 4. 18:06
와유 臥遊
안현미
내가 만약 옛 사람이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 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 해 다녀갔다"
하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안현미 시집, <이별의 재구성>, 창비,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