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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鶴洞/ 李仁老

추연욱 2015. 2. 6. 22:27

 

 

靑鶴洞

 

李仁老(1152~ 1230)

 

지리산은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북쪽 백두산으로부터 일어나 꽃봉오리처럼 그 봉우리와 골짜기가 이어져 帶方郡에 이르러서야 수천 리를 서리고 얽혀서 그 테두리는 무려 십여 고을에 뻗치었기에 달포를 돌아다녀야 대강 살필 수 있다.

옛 노인들의 전하는 바로는 그 속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협착하여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수십 리를 가서야 허광(虛曠)한 경지가 전개된다. 거기에는 모두 良田沃土가 널려있어 곡식을 심기에 알맞으나, 거기엔 청학만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대개 여기엔 옛날 세상을 피해 사는 사람이 살았기에 무너진 담과 구덩이가 가시덤불에 싸여 남아 있다.” 한다.

예전에 나는 堂兄1 최상국과 같이 옷깃을 떨치고 이 속된 세상과는 등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 우리는 서로 이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대고리짝에 소지품을 넣어 소 두서너 마리에다 싣고 들어가 이 세속과는 담을 쌓기로 했다. 드디어 화엄사로부터 출발하여 화개현에 이르러 신흥사에 투숙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모두 선경이었다.

千巖競秀하고 萬壑爭流하여 대울타리에 초가들이 복숭아꽃 살구꽃 핀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니 거의 인간세상이 아닌 듯하나 찾고자 하는 청학동은 마침내 찾지 못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시만 바윗돌에 남기고 돌아왔다.

 

頭流山逈暮雲低 두류산은 아득하고 저녁구름 낮게 깔려

萬壑千巖似會稽 천만 봉우리와 꼴짜기는 회계산 같네.

策杖欲尋靑鶴洞 지팡이 의지하여 청학동을 찾아가니

隔林空聽白猿啼 숲속에선 부질없는 산짐승 울음소리 뿐

 

樓臺漂渺三山遠 누대에선 삼신산2이 아득히 멀리있고

苔鮮微芒四字題 이끼 낀 바위에는 네 글자가 희미하네.

試問仙源何處是 묻노니 신선 사는 곳이 어디 멘가?

落花流水使人迷 꽃잎 떠 흐르는 물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네.

 

어제 書樓에서 우연히 五柳先生3을 훑어보다가 <桃花記>가 있기에 이것을 거듭 읽어 보았다.

대개 나라 때 어떤 이가 난리를 피해 처자를 거느리고 그윽하고 깊어 궁벽진 곳을 찾아 산이 둘렸고 시내가 거듭 흘러 樵童도 갈 수 없는 험한 이곳에 살았는데, 太元 연간에 어떤 어부가 다행히 한번 그곳을 찾았으나 그 다음엔 길을 잃어 그 곳을 다시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후세에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노래와 시로 전하여 桃源으로써 仙界라고 하고 장생불사하는 신선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하였으나 아마도 이 기록을 잘못 읽었기 때문일 것이니 사실은 저 청학동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劉子驥4와 같은 고상한 선비를 만나서 나도 그 곳을 한번 찾아가 볼 것인가.

 

이인로, <破閑集>에서 

 

鶴[두루미]은 신선들의  탈 것이다.

천 년만에 푸른색으로 변하여 靑鶴이 되고,  다시 천 넌이 지나면 색이 검어져 玄鶴이 되는 불사조로 믿었다.

특히 청학은 지리산에 살고 있다고 전하고 그 사는 곳을 청학동이라 하여 예로부터 신성시했다.

청학동은 길지로서 한국인의 이상향을 상징하고 있다.

 

 

도연명이 지은 <桃花源記>의 줄거리는 이렇다.

 

동진시대 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 그 근원을 찾아보려 하였다.

한참 올라가다가 보니 갑자기 복숭아나무 나무숲이 나타났다. 숲 주위에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었다. 어부는 그 아름다움에 취하여 자신도 모르게 복숭아나무 숲을 따라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 보니 복숭아나무 숲은 끝나고, 산이 가로막혀 있고, 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부는 배를 버리고 굴속으로 들어갔다.

굴 입구는 좁고 어두웠지만 좀 더 들어가니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며 별천지가 나타났다.

넓은 들판, 가지런한 건물들, 비옥한 논밭들이 보이고, 연못, 뽕나무, 대나무 등이 잘 어울려 있었다. 닭들이 울고, 삽사리들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참으로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각자 자기 생업에 열중하면서 해가 뜨면 밭에 나가 일을 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편안히 쉬는 요순시절의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조는 나라(247~ 207 BC) 때 난리 피하여 이곳으로 옮겨와 살게 되었고, 그후 오랫동안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오늘날까지 살아왔다고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바깥세상에서 진나라에 이어 전한 · 후한 · 삼국 · 서진 시대가 지나갔다는 것도 몰랐다.

 

어부는 그곳에서 며칠을 묵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부는 가족을 데리고 다시 그곳에 가서 살 생각으로 돌아오는 길 여러 군데에 표시를 해 놓았으나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어부가 우연히 만난 복숭아꽃 환하게 핀 마을 武陵桃源은 이상향이다.

유토피아다.

 

Utopia란 말은 Thomas More(1478~ 1535)가 그리스어의 'ou- 없는', 'toppos 장소' 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들었다.

또 그리스 말 'eu- 좋은', ' topia 장소'를 영어로 발음하면 유토피아가 된다.

유토피아는  그리하여 '아주 좋은 곳'이며, '어디에도 멊는 곳'이기도 하다. 

 

 

李白(701~ 702)의 시

山中問答

 

問余何事棲碧山 왜 산에 사느냐기에

笑而不答心自閑 그저 빙긋이 웃을 수밖에.

挑花流水杳然去 복사꽃 뛰워 물은 아득히…….

別有天地非人間 분명 여기는 별천지인 것을.

 

이원섭 역해, <唐詩>, 현암사, 1965.

 

 

 

安堅/ 夢遊桃源圖

<夢遊桃源圖>는 安堅이 세종대왕의 셋째 왕자 安平大君 李瑢(14181453)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산수화이다.

안평대군의 꿈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내용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몽유도원도>는1447년에 그려졌다.

안견의 생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종과 문종 때의 활동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몽유도원도>1893년 이전 어느때 일본으로 반출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몽유도원도>를 국보로 지정했다

<몽유도원도>는 일본에서 여러 사람을 거친 다음,

1950년대 초반에 덴리대[天理大學校]가 구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몽유도원도>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시된 것은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였다.

그리고 1996년 호암미술관의 조선 전기 국보전에서 다시 한번 전시되었다.

  1. 당형은 從兄이다. [본문으로]
  2. 중국에서는 발해만 동쪽에 있다는 蓬萊山 · 方丈山 · 瀛洲山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봉래산은 금강산, 방장산은 지리사, 영주산을 한라산이라 생각한다. [본문으로]
  3. 오류선생은 陶淵明(365~427)의 호다. 이름은 潛, '연명'은 字다. 東晉(317~ 420) 말기부터 南朝의 宋(420~ 479) 초기에 걸쳐 생존했다. [본문으로]
  4. 진나라 사람. 물욕을 떠나 산수를 즐기며 항상 은일한 삶을 살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