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서정주/ 귀촉도, 푸르른 날, 무등을 보며, 신록

추연욱 2014. 4. 28. 23:35

 

歸蜀道

 

서정주(1915~2000)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신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삼만리.

흰 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지 못하는 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질없는 머리털 엮어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 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서정주, <서정주 시선>, 정음사, 1965.

 

 

푸르른 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