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인도행

천년불심길- 2013년 9월 6일

추연욱 2013. 9. 7. 20:56

 

 

 

천년불심길- 2013년 9월 6일

 

 

선암사에 도착했다. 10시 15분.

선암사-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죽학리.

부산 동래에서 3시간쯤 걸렸다.

 

 

선암사 매표소

 

 

 

 

선암사

김극기

 

寂寂洞中寺 蕭蕭林下僧 고즈넉한 산골짜기의 절간 스산한 숲 아래 머문 스님.
情塵渾擺落 智水正澄凝 마음의 티끌 온전히 떨쳤고 지혜의 물 정히 맑게 고였네.
殷禮八千聖 淡交三要朋 8천 성인들께 큰 절 올리니 담담한 사귐은 삼요의 벗일세.
我來消熱惱  如對玉壺氷 내 와 들끓는 번뇌 삭히자니 옥병 속 찬 얼음 대한 듯해라.

<동국여지승람>, 40권.

 

선암사 부도밭

 

 

 

 

 

 

 

 

입구의 부도밭

11기의 부도와 8기의 부도비가 줄지어 서있다.

 

 

 

 

 

 

 

4마리의 사자가 삼층석탑을 지고았는 듯한 이 부도는 화신대사 부도이다.

 

 


 

 

 

 

 

선암사 장승

 

 

 

작은 승선교

 

 

 

 

안에서 본 작은 승선교

 

 

 

큰무지개다리 승선교(보물 제400호)

 

 

 

 

 

 

 

 

 

 

 

 

 

 

 

降仙樓

 

 

 

강선루 누각 아래를 지나려면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다리는 仙源橋다.

 

 

"十四年六月竣功"

앞에 두 자가 더 있는 듯한데 읽을 수 없다. 

 

 

안에서 본 강선루 

 

 

 

 

 

 

 

매점 각황

 천년불심길은 여기서 시작한다.

 

천년불심길은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8.4km다.

남도삼백리길 제9코스이기도 하다.

 

 

三印塘

 

 

三法印

세상을 잘 관찰해 보니 3가지 특징이 있더라.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러므로  잘 알아야 헤어날 수 있다.

인생의 현실을 여실히 관찰하는 불교의 출발점이요. 관찰법이며, 불교의 인식론이다.

불교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인생 자체의 실상 즉 고뇌에 싸이고, 어둠 속에 허덕이고 있는 인생 현실의 참다운 모습을 고찰하는 작업부터 시작하는데, 이때 삼법인을 말한다.

 

“일체는 무상하고, 일체는 괴로움이고, 일체는 무아다”

“모든 행은 무상하고, 모든 법은 무아요, 열반은 적정하다”<아함경 10권>

 

1. 諸行無常

2. 一切개고

3. 諸法無我

 

여기에 4. "涅槃寂靜"을 더하여 四法印이라고도 한다.

 

 

 

삼인당중수비 

 

 

마애불

동서남북 사방 모두 상이 있다.

 

 


 

 야생차밭

 

 

 하마비

 

 

 

 

 

 

선암사일주문

 

 

 

 

 

일주문 소맷돌 


 

 

안에서 본 일주문

 

 

 

 

 

 

범종루 

 

 

만세루, 바깥쪽에는 六朝古寺라 썼다.

 

 

현판 글씨는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1614~1636)이 썼다고 전한다.

 

 

 

대웅전 쪽에서 본 만세루 

 

 

 

대웅전

 

 

 

현판은 순조대왕의 장인 영안府院君 金祖淳(1764~1831)이 썼다.

현판에 두인처럼 보이는 글자가 김조순이다.

김조순은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시작한 사람이다.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독존으로 모셨다.

 

 

 

심검당

尋劍堂이라는 건물은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건물이다.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번뇌를 無明草라 하여 풀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 번뇌의 풀을 끊기 위해서는 칼이 필요하다.

이 번뇌를 끊을 칼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심검이다.

칼은 지혜를 상징한다. <금강반야바라밀경>에서 반야바라밀이 지혜이고, 이 지혜가 바로 '칼'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불상에는 칼을 든 불상이 없지만 외국의 불상 중에는 문수보살은 칼을 들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바로 지혜의 칼이다.

 

 

 

 

설선당

 

 

지장전

 

 

팔상전

 

 

팔상전 앞에 있는 상사화

 

 


 

작은 문에 宗正院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사적비

무우전에서 운수암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왼쪽 비는 1907년에 세운 중수비다. 

당대 문장인 부제학 蔡彭胤(1669~1731)이 짓고,

명필 예문관 직제학 李震休(1657~1710)가 섰다.

오른쪽의 것은 1929년에 세운 사적비다.

 

 

 

 

 

 

호남제일선원

문 안에 응진전이 있다.

 

 

 

선암매

 

 

 

 

 

 

 

 

 

 

 

 

 

 

 

 

 

 

 

 

 

 

 

 

 

 

 

 

 

 

 

 

 

 

 

 

한 송이 수련으로

 

이해인

 

내가 꿈을 긷는

당신의 못 속에

하얗게 떠다니는

한 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겹겹이 쌓인 평생의 그리움

물위에 풀어 놓고

그대로 목말라 물을 마시는 하루

 

도도한 사랑의 불길조차

담담히 다스리며 떠다니는

당신의 꽃으로 살게 하소서.

 

밤마다

별을 안고 합장하는

물빛의 염원.

 

단 하나의 영롱한 기도를

어둠의 심연에서 건져내게 하소서

나를 위해

순간마다 연못을 펼치는 당신.

 

그 푸른 물 위에

말없이 떠다니는

한 송이 수련으로 살게 하소서.
 

 

 

 

 

 

 

 

 

 

 

 

 

 

 

장경각

 

 

 

 

삼성각

 

 

 

 

와룡송

 

 

 

 

 

 

 

 

 

 

 

 

 

 

 

 

 

 

 

 

 

 

 

 

 

 

 

 

 

 선암사는 옛날부터 불이 잘 났다.

그래서 한때는 절 이름을 海泉寺하고도 했다.

절집 벽 군데군데 "海, 水" 등 글자를 새겼다.

군데군데 연못을 만들었다.

또 불과 관계있는 석등은 세우지 않았다.

 

 


 

적묵당

 

 

 

 

 

 

 

 

 

 

 

 

뒤깐, 해우소는 수리하는 중이었다.

 

 

 

 

 

 

 

 

 

 

 

 

 

 

 

 

 

 

 

 

부도밭이 또 있다.

 

 

 

 

 

 

 

 

임선교

 

 

 

 


 

 

 

 

야외학습장, 11시 40분.

 

 

 

 

 

 

 

 

 

 

 


 

 

 

 

 

 

편백나무

학명은 Chamaecyparis obtusa

측백나무과에 속하고 원산지는 일본이다.

노송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40m, 지름 2m에 달하며, 가지는 수평으로 퍼져서 원뿔형의 수관을 하고 있다.

수피는 적갈색이고 섬유성이며 세로로 얇게 벗겨진다.

잎은 마주 나고 두꺼우며 길이 1~1.5mm로 비을 같이 작고 뒷면의 氣孔條線(잎이 숨쉬는 부분으로 보통 잎 뒷에 흰 선으로 나타남)은 Y자형이다. 또한 잎 표면에 1개의 선이 있으며 뒷면에 흰 점이 있다.

열매는 毬果로 둥글고 지름 10~12mm이며 홍갈색이고 8개 내외의 실편으로 구성된다. 각 실편에는 종자가 두개씩 들어있다.

종자는 길이 3mm정도이고 두개의 지낭이 있으며 좁은 날개가 있다.

일본 특산종이며 재질이 좋으므로 한국에서는 남부지방에서는 조림수종으로 재배한다.

(현장에 있는 글을 옮겨 적었다.)

 

 

 

 

 

 

 

 

 

 

 

 

 

 

 

 

 

 

 

 

 

 

 

 

 

 

 

 


 

 

 

 

 

 

 

 

 

 

 

 

 

 

 

 

 

 

 

 

큰굴목재, 12시 45분.

 

 

 

 

 

 

 

 

 

 

 

아래보리밥집, 1시 10분.

 

 

 

 

 

 

보리밥이라기보다 잡곡밥이다.

 

 

 

 

 

 

 

 

 

 

 

 

 


 

 맹산골, 2시 15분.

 

 

 

배도사대피소, 2시 20분.

 선암사에서 3.3km 왔고, 송광사까지 3.3km 남았다.

 

 

 

 

 

 

 

 

 

 

 

 

 송광굴목삼거리, 2시 40분.

 

 

 이 어름이 은방울꽃 군락지구나.

 

 

 

 

 

 

송광굴목재, 2시 45분.

 

 


 

 

 

 

 

 

 

 

 

 

 

 

 

 

수석정삼거리, 3시 40분.

 

 

 

 

 

 

 

 

 

 

 

 

 

 

송광사로 왔다. 3시 50분.

뒤로 들어와서 우화각으로 들어간다.

 

 

우화각으로 들기 전에 작은 건물 두 채가 있다.

滌珠閣, 洗月閣

 

 

 

 

 

침계루

 

 

 

 

 

우화각

"松光寺", 현판은 해강 김규진이 섰다.

 

 

 

우화각은 凌虛橋란 무지개다리 위에 있다.

 

 

 

종고루, 아래 층은 천왕문이다. 

 

 

 

 

 

 

 

 

대웅보전

 

 

 

대웅보전에는 삼세여래와 사대보살을 모셨다.

삼세불은 석가모니불, 연등불, 미륵불,

석가모니불의 협시로 문수와 보현, 

연등불과 미륵불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셨다.

  

 

 

 

 

 

 

 

 

 

 

 

 

 

 

 

 

 

 

 

대웅보전 처마 밑에 있는 비사리구시는 행사가 있을 때 썼던 나무밥통이다.

1724년 남원 송동면 세전골의 씨리나무로 만든 것으로 일곱 가마 분량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지장전

 

 

 

 

 

 

약사전(보물 제302호)

현존 법당 중 가장 작다고 한다.

 

 

영산전(보물 제303호)

 

 

 

 

 

설법전은 대웅보전 뒤쪽 석축 중앙에 있는 계단을 올라 진여문을 지나 들어간다.

한때 고려대장경을 봉안했던 곳이다.

1899년 해인사 고려대장경을 인쇄해 삼보사찰에 각각 하나씩 봉안하였는데,

1951년에 불타 없어졌다.

현재 건물은 1968년 다시 지은 것이다.

지금은 법회를 위한 강당으로 쓰고있다.

 

 

 

 

 

 

 

 

성보박물관

 

 

 

 

 

관음전

 

 

 

 

 

 

 

 

 

하사당은 요사채다. 부엌이 딸린 승방이다.

조선초기의 건물로 우리나라에 남았는 승방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솟을지붕은 부엌칸 지붕 위의 환기창이다.

지금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고,

보조국사부도 앞에서 본 모습이다. 

 

 

 

 

佛日普照國師甘露之塔

비의 제자는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썼다.

 

 

 

 

 

 

 

 

 

 

 

 

 

 

 

 

 

 

 

 

 

 

 


 

 

 

 

 

 

 

 

 

 

 

 

 

 

 

대웅보전 쪽에서 본 종고루

 

 

 

송광사 뒤로 들어와 앞으로 나간다.

 

 

 

 

 

 

 

 

 

송광사일주문

 

 

 

 

 

 

 

 

 

 

碑林

 

 

 

 

 

 

 

 

 선정비도 하나 있고,

 

 

하마비

 

 

 

 

 

 

찻집 다송원 앞 


 


 

 

 

 

 

 

 

 

 

 

 

 

 

 

 

 

 

 

 

 

 

 

 

 

 

 

 

 

천왕문 같은데, 그건 아니고 송광사 매표소다.

밖으로 나와  봐야 매표소임을 안다. 


 

 

 

 

 송광사 주차장, 4시 30분.

 

 

종일 비를 맞았다.

집에 갈 일이 아득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