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낙화, 사모/ 조지훈

추연욱 2013. 5. 31. 06:11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 하노라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청록집


 

사모

 

 

사랑을 다해 사랑 하였노라고

정작 해야 할 말이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잊혀지기전

두고 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있어 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줄 오선을 그어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 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