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성,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과 소쇄원- 2021년 1월 1일
● 곡성 기차마을 휴게소
● 장성 외딴집(잔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삼본동)
■ 담양으로 가는 길
■ 담양읍 점심
● 관방제림(천연기념물 제366호)
■ 官防堤林(천연기념물 제366호)은,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담양천 제방을 따라 고목들의 긴 행렬이 이어져 있다.
관방제림은 조선 인조 26년(1648) 담양부사 成以性이,
영산강 상류인 담양천의 해마다 반복되는 수해를 막기위해 하천에 둑을 쌓고,
나무를 심으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철종 5년(1854년)에는 부사 黃鍾林이,
官費로 연인원 3만여 명을 동원하여 현재의 둑을 완성하고,숲을 조성했다.
그래서 '官防堤(관에서 막은 제방)'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숲은 당초에는 1.2km 정도였는데,
지속적으로 후계림을 조성하여 현재는 4km에 이르고 있다.
성이성 부사 시절에 심어진 나무는 높이 20m, 가슴높이의 둘레 3m가 넘는 거목으로 자라났다.
현재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 서어나무, 엄나무를 비롯하여 왕버들, 이팝나무, 곰의말채
검팽나무, 느릅나무 등 각종 낙엽활엽수들이 1번부터 177번까지 번호표를 달고 서있다.
수령 400살을 넘나드는 거목들이 즐비한 관방제림의 사계절은 모두 아름답다.
벚꽃 흐드러진 봄날의 화사함, 참매미 자지러지게 우는 여름날의 여유로움,
단풍들이 온 숲을 울긋불긋 물들이는 가을날의 화려함,
적막감 감도는 겨울 숲의 호젓함까지.
햇살좋은 날이면 여기저기에서 '국수내기 장기'가 벌어지며 동네 노인들의 놀이터가 된다.
오늘처럼 눈 온 후에는 아이들의 눈썰매장이기도 하다.
담양천 범람을 막기 위해 370여년 전부터 쌓아온 제방 위에 푸조나무와 팽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등 177그루가 1.6km 구간에 심어져 있다. 수령 100여년짜리부터 300년이 넘는 아름드리 나무도 있다.
1991년 문화재청은 이 나무들이 있는 12만여 ㎡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관방제림 전체의 60%가랑(103그루)이 느릅나뭇과에 속하는 활엽수인 ㅍ ㅜ조나무이다.
● 메타세쿼이아 길
■ 메타세쿼이아길은 담양에서 순창으로 이어지는 34번 국도에 위치한다.
원래 메타세쿼이아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식물 중 하나로 '수삼나무'라고도 한다.
메타세쿼이아가 터널을 이룬 이곳은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길 중 하나다.
높이가 족히 20m는 넘어 보이는 메타세쿼이아 1천500그루가 도열해 8.5㎞의 터널을 이루고 있다.
겨울철이라 붉게 물든 바늘잎들이 거의 떨어졌지만 적갈색의 아름드리 둥치는 여전히 당당하다.
담양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배달사고'로 탄생했다. 사연은 이렇다.
1970년대 초에 가로수 심기 사업이 한창일 때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메타세쿼이아 묘목이 담양으로 잘못 배달됐다.
메타세쿼이아는 값비싼 나무인지라 담양군이 되돌려 보내지 않고 얼른 심어버려 이 명물 길이 탄생하게 됐다고 한다.
● 소쇄원(명승 제40호)
광풍각 光風閣
왼쪽으로 광풍각이 보이고,
待鳳臺(봉황처럼 소중한 손님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 蕭灑園(명승 제40호) -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조광조의 門人이던 陽山甫(1503~ 1557)가,
남곤 등 훈구파가 일으킨 己卯士禍(1519)로 은사인 조광조가 전라남도 능주로 유배되자,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평생 處士로 살면서 지은 원림이다.
소쇄원은 사대부들의 별장격인 別墅의 하나로 현존하는 유적 중 가장 뛰어난 원림이다.
양산보가 이 정원을 이룰 당시 앞마을인 蒼岩村(蒼岩은 梁山甫 아버지의 호)은,
양씨들의 씨족 마을이었고 소쇄원은 그 후원적 성격을 띠었다.
‘蕭灑’라는 말은 孔德璋의 <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하다는 뜻이다.
양산보는 이러한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蕭灑翁’이라 하였다.
양산보는 10여 세까지 시골에서 수학을 하다가 13, 4세 때에 상경하여 조광조에게,
학문을 배우고 벼슬길에 오르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17세경에 근정전 親試에 급제했으나,
급제자가 너무 많다고 둘을 제외하는 데에 걸려서 낙방하게 되었다.
무성한 왕대숲길을 걸어 들어가면 맑은 계류가 흐르는 계곡 안에 자리잡은 소쇄원을 만난다.
정원은 계류를 중심축으로 하는 사다리꼴 형태이며,
흙으로 새메움을 한 기와지붕의 직선적인 흙돌담이 외부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계곡의 굴곡진 경사면들을 계단상으로 처리한 노단식 정원의 일종이며 비대칭적 산수원림이다.
전체 원역은 4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진다.
입구의 대숲부터 연못 앞 杏亭까지의 도입,
愛陽壇 마당의 갑자기 넓어지는 前庭,
霽月堂을 중심으로 밝은 사생활 공간인 內庭,
계류와 폭포・光風閣으로 이루어지는 溪庭이 그것이다.
정면에 짚으로 이은 정자가 待鳳臺(봉황처럼 소중한 손님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된 것을 17세기 초 중수하였다.
대봉대 건너 계곡에 언덕 소쇄원 중심건물 광풍각이 있다.
도입부에서 계정까지 이르는 과정은 어두움과 밝음,
적막함과 활기참 등의 대립적 구성이 강하게 대비・교차되어 있다.
애양단 구역은 이 원림의 입구이다.
계류 쪽의 자연과 添景施設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애양단이란 김인후가 지은, <蕭灑園 四八詠"에 있는 ‘陽壇冬午’라는 시제를 따서 송시열이 붙인 이름이다.
오곡문구역은 오곡문 옆의 담밑 구멍으로 흘러 들어오는 계류와 그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있는 공간이다.
오곡문의 ‘오곡’이란, 주변의 암반 위에 계류가 갈짓자 모양으로,
다섯번 돌아 흘러 내려간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 부근의 암반은 반반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에 넉넉한데,
영조 31년(1755)에 만들어진 <蕭灑園圖>에,
한편에서는 바둑을 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가야금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제월당과 광풍각은 극적인 대비가 된다.
전자가 정적이고 밝고 고전적인데 비해 후자는 동적이고 어둡고 낭만적인 분위기이다.
광풍각구역은 제월당구역의 아래쪽에 있는 광풍각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방기능의 공간이다.
광풍각 옆의 암반에는 석가산이 있는데,
이러한 조경방법은 고려시대의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광풍각
뒷쪽의 동산을 복사동산이라 하여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재현하려고 하였다.
제월당의 ‘제월’과 광풍각의 ‘광풍’은 송나라의 황정견이 유학자 주돈이의 사람됨을 평하여,
“胸懷灑落如光風霽月 가슴에 픔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맑은 날의 날빛과 같다”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소쇄원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의 언덕에 복사나무, 배롱나무등을 심어 철따라 꽃을 피게 하였으며,
광풍각 앞을 흘러내리는 계류와 자연폭포,
그리고 물레방아에서 쏟아지는 인공 폭포 등 자연과 인공이 조화되게 하였다.
정원이란 인공적인 공간 안에 자연적인 분위기를 치장한 것이라면,
원림은 자연의 멋과 조건을 그대로 살리면서 인공적으로 건물을 배치한 것이다.
전통 조경의 핵심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因借이다.
因’은 지세, 지형, 주어진 공간적 여건을 잘 활용하는 것이고,
‘借’는 건물과 조경물을 안배하는데 위치뿐 아니라 계절 등의 시간적 고려를 하는 것이다.
이 정원은 경사면의 적절한 노단식 처리라든가 기능적인 공간구획,
대숲의 오솔길, 지형에 따라 변화 있는 담장 지붕의 선,
담 밑에 뚫린 수문등 낭만적이고 장식적인 조경으로 원림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조선시대의 별서정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들머리 왼쪽 밭에 구부러진 백매가 있다.
벽에 "蕭灑處事 梁公之廬 소쇄처사 양공의 소박한 집"이란,
송시열 글씨의 글자판이 박혀있다.
제월당 霽月堂
제월당은 집 주인의 사적 공간이다.
광풍각 光風閣
광풍각은 소쇄원의 사랑으로,
소쇄원의 풍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종심공간이다.
숙소를 찾아 많이 해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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