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시집

12월의 독백/ 오광수, 우리 첫눈이 오는날 만나자

추연욱 2013. 12. 22. 20:34

 

12월의 독백

 

오광수

 

남은 달력 한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둘러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